인구 25만 명이 사는 미국 남부의 러레이도(Laredo)시(市)에는 서점(書店)이 없다. 작년 초 미국 1위 서점업체 반즈앤노블은 이 도시의 유일한 서점을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쇄했다. 사는 곳에 책방이 없다 보니 멀리 이동해야 하는데 서점이 있는 근처 샌안토니오시를 가려면 무려 250㎞를 달려야 한다. 1만 명에 달하는 러레이도 시민이 "서점을 부활시켜달라"며 서명 운동을 하고 있지만 1년 넘도록 '서점 없는 도시' 불명예는 그대로다.

종이 대신 단말기를 통해 책을 읽을 수 있는 킨들과 아이패드를 앞세운 아마존과 애플의 전자책 공세에 미국의 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책 사이에 꽂혀 있는 아마존의 e북 전용 단말기인‘킨들3’.

'킨들(Kindle)'과 '아이패드(iPad)'를 앞세운 아마존과 애플의 'e북(전자책)' 공세에 미국 서점이 붕괴되고 있다. e북은 종이책이 아닌 컴퓨터 파일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다. e북 전용단말기 킨들이나 태블릿PC 아이패드 등과 같은 전자 단말기에서 읽을 수 있다. 가격은 종이책보다 40~60%가량 저렴하다. 미국 e북 시장은 2007년 3170만 달러(약 350억원)에서 작년 4억4130만달러(4900억원)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반면 종이책 시장은 같은 기간 54억5790만달러(약 6조800억원)에서 2010년 48억6400만달러(약 5조4200억원)로 줄었다. e북이 늘어난 만큼 종이책 시장은 축소된 것이다. e북의 확대가 고스란히 서점의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서점의 수익 기반 무너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는 올 초 실적 발표 자리에서 "킨들3이 수백만 대 팔리며 킨들용 e북 판매량이 페이퍼백(paperback) 판매량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킨들은 e북을 읽기 위해 만들어진 전용 단말기. 킨들은 이동통신망과 접속이 가능해, 언제 어디서나 e북을 다운로드받아 구매할 수 있다. 아마존은 킨들1·2·3를 연이어 출시해 1000만 대 이상을 팔았다. 애플의 아이패드는 e북·신문·잡지 등을 읽기에도 충분한 화면 크기를 갖췄다.

아이패드는 작년 4월 출시된 뒤 1480만 대가 팔렸다.

소비자에게 킨들과 아이패드는 '모바일 서점'이다. 킨들의 경우 e북 81만 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오프라인 서점에서 팔리는 전체 종이책 권수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예컨대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12종 가운데 107종이 킨들용 e북으로 판매되고 있다. 올해 킨들3과 아이패드2의 판매 예상 대수는 각각 1200만대와 1500만대. 연말이면 미국 5000만명 이상의 소비자들은 서점 없이도 책을 구매해 읽을 수 있게 된다.

한때 미국 전체 도서 판매의 10% 이상을 팔던 보더스는 이런 e북 공세를 못 견디고 12억9000만달러의 부채를 짊어진 채 지난 2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보더스는 4월 말까지 자사의 642개 서점 가운데 200여 곳을 폐쇄할 예정이다. '서점 없는 도시'가 더욱 늘어나는 것이다. 미국 서점 업계에선 '제2, 제3의 보더스'가 속출할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미국발(發) 서점 붕괴, 국내 서점가에도 위기감 커져

미국발(發) 서점 붕괴를 지켜보는 국내 서점가에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이창연 회장(성동구 도원문고 사장)은 "벌써 인터넷 등에선 2000원짜리 e북이 나오고 있다"며 "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을 사고팔던 시대가 저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동네 서점에는 1만원짜리 책이 7000~7500원에 들어오는데, e북은 5000원 정도에 팔린다"며 "e북과 가격경쟁을 해서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했다.

국내 서점 수는 2003년 3589개에서 2009년 2846개로 급감했다. 이런 쇠퇴는 예스24와 같은 인터넷서점의 저가 공세에 따른 것. 인터넷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동네서점들이 이번엔 e북과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다. 국내에는 아마존의 킨들이 진출하지 않았고 애플의 아이패드도 10여 만대 정도가 팔려, 아직 e북의 공세가 덜한 상황이다. 하지만 애플의 e북 전략은 국내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애플은 최근 예스24가 개발사를 통해 신청한 아이패드용 e북 판매 어플(응용프로그램)의 등록 심사를 거절했다. 한국 시장의 경쟁자를 사전 견제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소니가 애플에 아이패드용 e북 판매 어플을 등록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