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러키(lucky)한 사람입니다. 하고 싶었던 일은 다 했어요. 언제든지 떠나야 한다는 건, 월급쟁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14년 동안 현대자동차의 연구개발(R&D) 책임자로 있다가 지난 15일 퇴직한 이현순 현대차 전 연구개발 총괄 부회장(61)은 2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원 없이 일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현장을 떠나는 아쉬움'도 함께 피력했다.

이 전 부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GM을 거쳐 1984년 현대차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독자 엔진을 개발해 달라"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부탁을 받고 입사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자동차산업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 최초로 독자 기술로 개발한 엔진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1991년 경기도 용인 마북리연구소의 엔진개발실 총괄이사로 있을 당시, 현대차 선임연구원이던 박심수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 등 연구원 5명과 함께 개발한 1.5L(리터)급 '알파 엔진'이 그것이다.

이현순 전 현대차 부회장은 25일“언제든지 떠나야 한다는 건 월급쟁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아쉬움을표했다.

'알파 엔진'은 현대차 내외부의 엄청난 견제와 압력 속에 탄생했다. 어떤 회사도 엔진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부품업체들의 협조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당시 외국 부품업체들은 돈을 주겠다는데도 부품 개발과 공급을 거부했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당 수천만원에 달하던 엔진 시제품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이현순을 잘라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해외 경쟁업체의 견제와 내부의 압력이 겹치면서 그는 결국 개발책임자 자리에서 보직해임됐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그 사실을 6개월 뒤에야 알았다. 이 전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노발대발하며 나를 원래 자리로 앉혔다"고 말했다.

'알파 엔진'은 그와 같은 곡절 끝에 탄생했다. 착수부터 성공까지는 7년이 걸렸다. 한 번 성공하자 두 번째부터는 훨씬 수월했다. 1995년에는 배기량 2L의 중형급 '베타 엔진'과 경차용 '입실론 엔진'을 잇따라 개발했다. 2004년에는 중·대형차용 '세타 엔진'을 개발했다. 세타 엔진은 미국 크라이슬러를 비롯, 그전까지 현대차의 '스승' 노릇을 하던 일본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됐다. 그가 R&D 총괄부회장으로 있던 2009~2011년에는 5L급 8기통 '타우 엔진'이 3년 연속 세계 10대 엔진으로 선정됐다.

현대자동차 엔진 개발의 산 역사이자 증인인 그의 퇴진에 외신은 '현대차의 기술 치프(chief)가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그의 퇴임 인사는 정규 인사시즌과 무관하게 이뤄졌다. 느닷없는 인사 배경을 묻자 "(이런 인사가 현대차에서는)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한다"면서도 "우리 수준이 이렇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주변의 아쉬움을 전하자 그는 "나는 이룰 것을 다 이룬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 세계의 어떤 엔지니어보다도 보람과 자부심이 있다"며 "환갑 지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자동차 기술 발전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회한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몸은 나왔지만 (현대차의 연구개발 부문이) 문제라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연구원들을 부를 것"이라며 현장에 대한 여전한 관심과 열의를 보였다. "(그것이)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을 위해서, 국민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기초를 단단히 다졌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전 부회장의 퇴임이 발표된 날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10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이튿날이었다. 그는 고인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회장님은 저를 늘 북돋아주고 힘이 돼 주셨습니다. 현대차가 일본 미쓰비시에 기술을 전수받던 시절, 구보 도미오 미쓰비시 회장이 회장님에게 '닥터 리가 사표를 내면 현대차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회장님은 일고의 여지 없이 그 제안을 뿌리쳤습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존경할 겁니다. 내가 정말 그분이 없었으면…."

그는 독자 엔진을 개발해 한국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2006년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됐으며 2009년 한국공학한림원상 대상, 교육과학기술부 '최고과학기술인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