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월짜리 딸을 키우는 주부 김모(33·서울 홍제동)씨는 지난 11일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후쿠시마(福島) 원전(원자력발전소)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인터넷쇼핑몰에 들어가 일본 기저귀 한 박스(90개)를 샀다. 원전 사고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평소 아이가 차던 일본제 기저귀 수입이 제대로 안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제 기저귀로 바꾸고 난 뒤 아이 피부가 무르는 일이 없었고 변은 새지 않았다"며 "국산과 비교하면 가격에 비해 품질이 월등히 좋다"고 말했다.

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산 기저귀‘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2일 서울 한 백화점의 일본산 기저귀 진열대 앞에‘품절’안내문이 붙어 있다.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이 유아를 키우는 국내 주부들에게까지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일제 기저귀와 분유, 이유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산 유아용품을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과 대형마트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부들은 왜 일본제 기저귀와 분유를 찾는 것일까.

일제 기저귀, 환율 낮을 땐 국산보다 저렴

주부들은 '가격 대비 월등한 품질'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기저귀의 경우 얇고 가벼우며, 부드럽기까지 해 아이들이 편안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변도 잘 새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본지 취재진이 일제 G기저귀와 국산 H기저귀를 정밀 저울을 이용해 비교측정해 봤다. 일제가 6g 가벼웠고 두께도 얇았다.

G기저귀를 수입판매하는 제이앤하이 관계자는 "기술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일본제 기저귀는 물기를 흡수하는 내부 재질이 뛰어나고, 올록볼록해 피부와 접촉면을 최소화 하는 효과가 단연 국산을 능가한다는 평가다.

이 관계자는 "국내 한 기저귀 업체가 최근 우리 제품을 면밀하게 연구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평가단에게 나눠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격차도 크지 않다. 현재 일제 G기저귀(대형)는 개당 380원 정도. 국산 H기저귀(개당 295원)보다 비싸다. 하지만 2~3년 전 환율이 100엔 당 900원대였을 때는 오히려 G기저귀 값이 국산보다 쌌다.

2008년 2월 롯데홈쇼핑은 일제 G기저귀를 개당 185원에 판매했다. 당시 국산 H제품은 인터넷쇼핑몰에서 250원에 팔았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당시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0엔당 940원이었다"며 "관세(최대 8%)와 운송비를 다 부담하고도 일제 기저귀를 더 싸게 팔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체 기저귀 시장(3600억~4000억원)의 5분의 1 정도를 일본 기저귀가 차지하고 있다고 업계에서는 추정한다. 기저귀를 쓰는 아기들이 11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므로 약 22만명이 일본산 기저귀를 쓰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제 기저귀 수입액은 공식 신고된 것만 5251만달러(약 588억원)에 달했다.

식중독균 나왔다는 분유 어떻게 먹이나

분유는 식품안전 부문에서 일제가 훨씬 더 신뢰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6년 이후 분유 관련 사고가 나지 않은 해가 한 해도 없었다. 2006년 남양유업의 분유에서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사카자키균이 검출됐고, 2007년에는 매일유업 분유에서도 같은 균이 나왔다.

2008년엔 파스퇴르 분유에서, 2009년엔 매일유업 분유에서 대장균이 나왔다.

또 작년 11월엔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산부인과 병원의 신생아들에게 자사 분유를 먹이는 조건으로 수십억원의 리베이트를 줬다가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분유는 한번 결정하면 바꾸기가 쉽지 않은 점을 노린 것이다. 최근에는 매일유업에서 식중독균이 나와 문제가 됐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분유 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 점이 주부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일본 분유 수입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8년 4만3000달러(5000만원)에 불과하던 것이 작년엔 256만2000달러(28억6000만원)로 늘었다. 3년 만에 60배가 됐다. 분유와 기저귀뿐 아니라 다른 생활용품도 일본산에 대한 인기는 높다. 젖병, 자극이 없는 비누 등을 찾는 주부들도 많다.

그러나 국내 기저귀 업체 관계자는 "일본산은 무조건 좋다는 맹신이 만들어낸 한 때의 유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