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꼭짓점을 찍은 것일까? 지난 11일 일본 대지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 유가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세계 3위의 석유 소비국인 일본의 대지진으로 정유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일본의 원유 수요가 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유가 꼭짓점이라면 유류세 인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유류세 인하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선 유류세를 내려봤자 국민들이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재정의 부담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실제 정부는 2008년 3월 두바이유가 배럴당 95달러로 올랐을 때 유류세 10% 인하를 단행했다. 그렇지만 이후 국제 유가가 7월까지 147달러로 더 가파르게 오르는 바람에 유류세를 내린 효과를 별로 보지 못했다.

정부는 국제 유가가 꼭짓점을 찍고 떨어질 즈음에 유류세를 인하하면 가격 하락에 더해 세금 인하까지 겹치면서 체감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유류세 인하 카드를 뽑을지 주목된다. 다만 현재 리비아 사태 등 중동의 정정(政情) 불안이 계속되고 있어 국제 유가의 방향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정부는 유류세 인하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 "유가 급등 상황선 유류세 인하 체감 거의 못해"

현재 휘발유 가격은 2008년 유류세 인하 당시보다도 높다. 13일 석유공사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916.5원으로 정부가 유류세를 10% 내리기 직전인 2008년 3월 첫째 주(1687.87원)보다 13.5% 높다. 당시보다 국제 유가가 비싸졌고, 환율도 올라 원화로 따진 수입 가격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에 시민단체와 정유업계를 중심으로 유류세 인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86.1%의 응답자가 "유류세 인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포함해서 고유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내려봤자 가격 인하에 대한 체감 효과는 떨어지면서 재정 부담만 늘어난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3월 둘째 주의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916.52원으로 전주보다 38.13원 올랐다. 이달 들어서만 59.88원 오른 셈이다. 유류세 인하로 L당 80원을 내려도 한 달 정도면 인하 효과가 사라지는 셈이다. 관세를 1%포인트 내려도 이달 초처럼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이라면 일주일 만에 인하 효과가 사라진다.

과거에도 비슷했다. 지난 2008년에 유류세를 10% 내리자 세금은 L당 80원 가까이(2월 884.79원→3월 809.55원) 내렸지만, 국제 유가가 계속 치솟는 바람에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오히려 1%(2월 L당 1653.94원→3월 1670.25원)가 올랐다. 그 결과 국민들의 휘발유값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하고 정부의 재정 수입만 줄었다. 2008년 3~12월에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내림으로써 줄어든 세수(稅收)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휘발유 가격 중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외국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라는 점도 정부를 망설이게 한다. OECD 회원국 중 비교 가능한 자료가 있는 21개국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세금 비중은 47%로 19위에 불과하다. 영국이 62.1%로 가장 높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2008년 3월의 유류세 인하는 대선 공약사항이라 새 정부 출범 후에 바로 시행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며 "유류세를 인하하면 기름을 많이 쓰는 고소득층이 혜택을 더 많이 보는 단점도 있어 유류세 인하 효과를 면밀하게 따져서 인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