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배추가 망가진 건 처음 봐. 10포기 중 한두 포기는 아예 못 쓰겄어, 그냥 버려야 해."

25일 겨울배추 수확이 한창인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의 한 배추밭. 여성 인부 2명이 훑고 지나간 배추밭 곳곳에는 냉해로 뿌리가 썩어버린 배추들이 널려 있었다. 배추를 수확하던 김정순(52)씨는 "포장이 가능한 배추도 상한 겉잎을 10장 정도 떼고 나면 무게가 확 줄어든다"며 혀를 끌끌 찼다.

25일 겨울배추 수확이 한창인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의 한 배추밭에서 주민 김정순씨가 냉해로 뿌리가 썩은 배추를 보여주고 있다. 겨울배추 주산지인 해남의 냉해 피해로 겨울배추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해남군은 국내에 유통되는 겨울배추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곳이다. 그런데 올겨울 이상(異常) 한파와 폭설로 배추 농사가 엉망이 됐다. 이 때문에 작년 가을 배추 한 포기에 1만2000원까지 뛰었던 '배추값 파동'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해남은 배추를 재배하는 농가가 늘면서 재배면적이 20% 넓어졌지만 냉해 때문에 올 생산량은 작년의 절반밖에 안 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산지유통인 김종석씨는 "포기당 4~5㎏ 되는 배추에서 썩은 잎을 떼고 나니 2.8㎏ 정도"라며 "예년보다 생산량이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겨울배추 생산량이 평년(37만9000t)보다 30% 적은 26만7000t에 그칠 것으로 본다. 특히 3월 중순부터 봄 배추가 출하되는 4월 말까지의 공급 물량이 상당히 부족할 것으로 보고 배추 2000t을 수매(收買)하고 있다. 상태가 좋은 배추를 저온창고에 보관해놨다가 공급이 부족할 때 시중에 유통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매 작업을 하러 해남에 내려온 이원영 농수산물유통공사 차장은 "산지 유통인들이 가져오는 배추 가운데 절반가량은 뿌리가 썩기 시작한 것들이라 오래 저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요즘 배추값은 포기당 4700원(소매가·23일 기준) 정도다. 농식품부는 물량이 달릴 경우 배추값이 6000원가량까지 뛰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포기당 1만2000원까지 치솟았던 작년 수준까지는 치솟지 않을 것으로 본다. 가정에서의 배추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계절인 데다, 중국산 배추를 2000t 수입하고 봄배추 출하 시기를 앞당기는 등의 대책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충분치는 않다.

다급해진 농식품부는 급기야 배추김치를 덜 먹게 만드는 대책에 나섰다. 최근 군대와 전국의 음식점에 "배추김치 대신 깍두기를 많이 내라"고 요청했다. 3월 개학을 하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급식에 김치를 덜 내도록 교육부에도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