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보급 이후 IT·미디어 기업들은 '공짜'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 늘 시달려왔다. 일상세계와 달리 온라인에서는 기술 혁명에 힘입어 정보를 저장·복제하는 비용이 거의 '제로(0)'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편집장을 지낸 니컬러스 카는 "IT가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돈을 버는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로 적어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돈 주고 DVD를 사던 고객들은 10여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불법복제된 영상물을 공짜로 내려받고 있다. 음반시장 역시 불법복제로 최근 5년간 시장의 30%가 줄었다.

그리고 이제 국내 이동통신업계가 '공짜'와 경쟁하게 됐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800만명에 달하면서 휴대폰에서 무료로 음성통화·문자메시지·메신저 등을 쓸 수 있는 프로그램(앱)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스카이프 테크놀로지스의 토니 베이츠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2011'에서 무료통화 프로그램 '스카이프'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무료 문자·통화 서비스 봇물

이동통신망은 기본적으로 유료로 운영된다. 반면 유무선 인터넷 통신망은 이동통신망보다 사용요금이 저렴하다. 관공서나 은행 등에서 공짜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자 소비자들은 이동통신망 대신 인터넷망에 접속해 음성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쓰는 게 더 유리해졌다. 필요한 프로그램만 내려받으면 스마트폰에서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를 얼마든지 공짜로 쓸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자메시지다. 지난해부터 이동통신망에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 수는 정체된 반면, 인터넷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대폭 늘었다.

'카카오톡'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를 공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출시 이후 입소문이 퍼지면서 1년 만에 700만명이 가입했다. 하루에 메시지 1억 건이 오간다.

카카오톡의 성공에 자극받은 NHN도 최근 비슷한 서비스 '네이버톡'을 선보였다. SK커뮤니케이션즈도 지난해 8월 스마트폰용 메신저 '네이트온UC'를 내놓아 가입자 500만명 이상을 끌어들였다.

음성통화도 공짜로 쓰는 사람이 늘었다. 대표적인 인터넷전화 스카이프(Skype)는 국내 가입자가 500만명에 달한다. 예전에는 컴퓨터에서만 전화를 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올리브폰, 터치링 같은 무료통화 앱도 인기다. 다음커뮤니케이션도 메신저 '마이피플'에 최근 무료통화 기능을 집어넣었다. 김지현 다음커뮤니케이션 모바일본부장은 "1990년대 말 PC통신이 인터넷의 도입으로 위기를 맞았듯 이제 이동통신업체들이 인터넷 통화 서비스를 고민하는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선별적 공짜' 전략으로 맞서

그렇다고 통신업계가 영화사나 음반사들처럼 쉽사리 자신의 '안방'을 내줄 태세는 아니다. 이들은 10년여간 '인터넷 혁명'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교훈을 얻어왔다.

통신업계가 공짜 서비스에 맞서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선별적인 공짜'를 제공하는 전략이다. 통신망 사용 대가를 지불하는 고객에게만 차별적으로 인터넷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동통신업체들은 저렴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무료통화 앱을 설치해도 작동이 되지 않게 서비스를 막았다. 가격에 따른 일종의 서비스 차별화다.

각 업체가 '공짜 서비스'를 허용하는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SK텔레콤은 '올인원55' 이상의 고액 요금제 사용자에 대해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허용한다. KT 역시 i밸류 요금제 이상의 고가 요금을 내는 경우만 제한적으로 인터넷전화를 허용한다. LG 유플러스는 아예 인터넷전화용 앱을 자체 개발하고, 이 앱을 내려받은 사용자끼리만 무료통화를 제공한다.

실제로 넥슨 등 게임업체들은 이런 '선별적인 공짜(부분유료화)' 전략을 통해 사용자를 많이 모으면서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낸다.

카카오톡 / 올리브폰

이동통신업체는 스마트폰에서 저렴한 인터넷전화를 무차별적으로 허용할 경우 전체 통신망에 과부하가 걸려 다른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고 항변한다. 유선인터넷에서 일부 과다 사용자(헤비유저) 때문에 전체적으로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김철기 KT 홍보팀장은 "유럽에서도 고가 요금상품의 경우에만 휴대전화에서 인터넷전화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며 "미국 역시 인터넷전화 차단을 통신업체의 정당한 권리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통신업체들의 두 번째 전략은 인터넷망에서 고객들이 기꺼이 돈을 낼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KT는 지난해 12월 카카오톡과 제휴해 이용자들이 상대방에게 커피·케이크 상품권 등을 선물할 수 있는 '기프티쇼'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하루 거래액이 1억원에 달한다. 거래를 통해 발생한 수익은 양사가 나눠 갖는다. AT&T·버라이즌 등 미국의 통신업체들도 스카이프와 제휴를 맺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시도 중이다.

'프리(Free)'라는 책에서 '공짜 경제'의 원리를 설명했던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Wired·저명한 IT전문지) 편집장은 "무언가 디지털화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공짜 버전이 나오곤 만다"며 "공짜 버전에서는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서비스할 수 있어야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