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산재한 구제역 가축 매몰지가 4500여곳에 육박하면서 이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침출수가 지하수·토양 등을 오염시켜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종 2차 오염 가운데 병원성 미생물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숨진 가축에서 번식하는 병원균이 지하수와 흙으로 흘러들거나, 토양에 원래 있던 병원균들이 침출수로 인해 대거 증식하면서 사람에까지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영순 명예교수는 "이번 구제역 파동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여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겪는 (2차 환경오염 피해) 사례들이 세계적으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며 "매몰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농부, 매몰지 인근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인부 등은 병원균 감염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기자 ps@chosun.com

"고(高)위험 병원균에 노출될 가능성"

매몰지 침출수 오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위험 병원균에 노출될 가능성은 정부 의뢰로 연구용역을 실시한 외부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를 통해 일부 확인된 것으로 14일 본지 취재결과 밝혀졌다. 서울시립대 김계훈 교수팀이 환경부 의뢰로 지난 2008년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 7만4914마리가 묻힌 경기도 평택시의 한 매몰지 내부 및 외부 토양에 든 병원균 규모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몰지 내부에 존재하는 바실루스균이 매몰지 밖보다 27배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실루스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체를 잘 분해해 부패를 촉진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균들도 많지만 문제는 매몰지 내부 토양에 동물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주는 탄저균과 식중독균이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균들 역시 바실루스균의 한 종류다.

이 연구에 참여한 제주대 의대 이근화 교수는 "매몰지 내부에서는 18개 토양 시료 가운데 16개 시료(88.9%)에서 바실루스균이 발견된 반면 매몰지 외부 토양에서는 30개 시료 중 1개(3.3%)에서만 바실루스균이 발견됐다"며 "가축의 사체가 부패하면서 원래 땅속에 있던 이 균이 급격히 증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매몰지의 침출수가 밖으로 새나와 지하수·토양 등을 오염시킬 경우 매몰지 안에서 증식한 바실루스균 역시 밖으로 대거 새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근화 교수는 당시 이런 사실을 확인했지만 "탄저균이 실제 그 안에 포함돼 있었는지는 연구비 부족 등으로 조사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구제역으로 발생한 매몰지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매몰지 침출수에 탄저균 같은 위험한 병원균이 들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저병에 대비해야"

국내에서 탄저병에 걸려 숨진 경우도 정부 공식 통계로 잡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3년 사망 원인에 대한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후 1989·1990·1994·1995·2000년에 각 1명씩 모두 5명이 탄저병으로 숨졌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이 같은 탄저병 위험성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14일 "최근 국내 가축에서 탄저병 발생이 없었기 때문에 구제역으로 매몰하는 가축에 탄저균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국내 토양도 탄저균에 거의 오염돼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구제역 매몰지의 침출수에 의한 탄저병 발생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이영순 명예교수는 "탄저균이 들어 있는 지점(땅속)에 대해 정부가 사전 방역을 실시해서 탄저균으로 인한 위험과 불안감을 사전에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탄저병(炭疽病)

소, 양, 산양, 말, 노새, 개 등 주로 동물이 걸리는 전염병이다. 탄저균에 감염된 고기를 먹을 경우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 사람이 감염되면 비장(脾臟)에 석탄(炭)과 같은 검은색의 악성 종기(疽)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어서 탄저병이란 명칭이 붙었다. 피부에 노출되었을 경우 가려움증, 부스럼, 고름 등이 생긴다. 호흡기에 감염되면 초기에 감기나 폐렴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패혈증(敗血症)을 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