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연휴에도 전국의 도로는 정체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고속도로는 차량들이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처럼 느릿느릿 진행할 것이고, 그 속에 앉은 귀성객들은 어쩌면 정부의 도로 정책을 탓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귀성 정체의 고통이 오로지 도로 탓만은 아니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지난 2008년 일본의 스기야마 박사는 길이 230m의 원형도로에서 승용차로 실험을 했다. 운전자들에겐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속 30㎞로 운행하라"는 지침이 주어졌고 도로 위엔 장애물도 신호등도 없었다. 처음엔 22대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대열의 한 지점에서 홀연 정체가 나타났다. 차량 수를 늘리자 정체가 출현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스기야마 박사는 교통사고나 도로공사, 병목 등의 요소가 없어도 교통정체가 생길 수 있음을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른바 '유령 정체(phantom congestion)'이다.

지난해 추석 때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 인근의 차량들.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귀성전쟁의 고통도 운전자들이 조금씩만 주의를 한다면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는 "교통 정체의 핵심원인 중 하나는 전체 교통흐름의 리듬을 깨는 돌발적인 브레이크 조작, 핸들 틀기, 급감속 등 운전자들의 과잉대응"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소한 행동의 영향이 뒤로 갈수록 증폭돼 정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생긴 정체는 도로에 유입되는 교통량이 급격히 줄지 않는 한 교통흐름의 반대방향으로 계속 거슬러간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부산 부근에서 생긴 정체는 '양산→김천→천안→수원'식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결국 귀향길에 오른 운전자들이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돌발운전을 줄인다면, 설 연휴 정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만약 설 연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운전자들이 누구 하나 돌출하지 않고 한몸처럼 운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에게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모든 자동차들이 무인운전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김범준 교수는 "무인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하는 것과 달리 개별적인 과잉대응을 줄일 수가 있기 때문에 정체가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 대열을 생각해보자.

사람이라면 맨 앞차가 출발해도 대열의 후미에 있는 자동차가 움직일 때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무인자동차의 경우는 신호가 바뀌는 순간 마치 열차가 움직이듯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거리 정체가 훨씬 줄어들게 된다. 무선통신 기술을 통해 앞차와 신호의 흐름을 미리 감지할 수 있고 동작의 오차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무인자동차는 아직 도로를 마음 놓고 달릴 만큼 안전하지는 못하다. 갑자기 사람이 뛰어든다든지 하는 돌발 변수에 모두 대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인과 유인을 절충한 방식들이 연구되고 있다. EU가 연구비를 대고 스웨덴의 자동차 메이커 볼보(VOLVO)가 최근 시험운전에 성공한 '자동차 트레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열을 선도하는 차량 뒤로 5대에서 15대 정도의 무인운전 차량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대오를 이뤄가는 형태다. 다만 선도 차량의 운전은 도로에 익숙한 베테랑 운전자가 맡는다. 선도 차량의 운행정보(속도, 핸들링, 브레이킹 등)는 무선인터넷을 통해 뒤 차량에 자동전달돼 이들은 마치 한몸처럼 움직인다.

정체를 줄이는 또 다른 대안 중 하나는 제한속도 수시변경 시스템이다.〈그림 참조〉 어느 한 지점에서 정체가 발생했을 경우 그 후방 지점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속도를 전체적으로 낮춰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서 발생한 정체가 풀릴 때까지 교통 흐름을 늦춰줘서 정체가 퍼져 나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