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겨 번지고 있는 이번 구제역(口蹄疫)으로 인한 피해는, 66년 만에 다시 구제역이 발생한 2000년 이후 4차례의 구제역을 합친 피해액(5970억원)의 2배에 육박한다. 6일 현재 97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이 엄청난 돈을 재해 관련 예비비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구제역이 아니었다면 다른 분야에 사용됐을 국민의 세금이다. 지난해 12월 예비비 3528억원 등이 배정됐고, 올해는 가축질병방역비 1558억원 가운데 일부를 사용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은 올해 재해 관련 예비비(1조2000억원)를 사용할 계획이다.

백신 접종… 전국적으로 확산된 구제역으로 인해 94만 마리가 넘는 소, 돼지를 살처분한 가운데, 6일 충남 보령시의 한 축산 농가에서 수의사가 소에게 구제역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보상금은 초동 대응 실패 등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베트남 등 구제역이 만연한 국가들을 여행하고 귀국하면서 방역 당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거나 축사 위생 관리 등을 소홀히 한 농장주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제역 확산에 책임이 있는 농장주라도 살처분을 하면 거의 대부분 시가(時價)의 100% 보상금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법은 구제역 의심 신고를 지연하거나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소독이나 이동제한 등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살처분 보상금을 20~60% 감액해서 지급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감액은 불가능하다고 방역 당국은 밝혔다. 한 관계자는 "감액은 얘기도 꺼낼 수 없다. 전염 경로 조사가 확실치 않은 것도 있지만 '자식 같은 소'를 살처분했다는 농민들의 목소리에 덮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구제역 발생 농가의 소를 살처분할 경우 시가의 60~80%만 지급한다.

정부가 구제역으로 지출하는 비용 가운데는 살(殺)처분 보상금 규모가 가장 크다. 살처분을 한 농가에 대해서 시가(時價)대로 보상해 준다. 다 큰 한우는 마리당 500만원 안팎, 다 큰 돼지는 마리당 30만원 정도다. 6일까지 보상금 규모는 7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방역 초소 설치, 소독약 구입 등 방역 비용도 156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 대책 강화와 함께 축산 농가의 방역 의식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구제역 확산과 관련이 있는 일부 농가와 아무런 잘못없이 정부가 시행하는 예방적 살처분에 응한 농가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구제역 발생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추가 확산이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구제역(口蹄疫)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게 감염되는 전염병이다. 대표적인 증상이 입이나 잇몸, 혀나 발굽 사이 등에 물집이 생기는 것이라, 한자의 입 구(口)와 굽 제(蹄)를 사용해 병명을 표시한다. 감염된 소나 돼지는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식욕이 저하되어 심한 경우 죽게 된다. 구제역에 걸린 소나 돼지의 고기를 날로 먹어도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

16세 초 이탈리아 북부에서 처음 확인된 뒤 19세기 들어 전 세계로 퍼졌다. 국내에서는 1934년 이후 발생하지 않았다가 66년 만인 지난 2000년 다시 발생했다.

주로 공기를 통해 전염되며, 감염된 동물의 물집액이나 침, 분변, 사람의 의복 등을 통해서도 확산된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A급 질병(전파력이 빠르고 국제교역상 경제적인 피해가 매우 큰 질병)으로 분류하며, 우리나라도 제1종 가축 전염병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