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수 없게 꽉 막혔는데, 무슨 소·돼지를 잡아서 팝니까?"

작년 1월에 이어 1년 만에 구제역이 다시 퍼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포천농축산 도축장. 5일 낮 기자가 찾아간 현장에는 소·돼지 울음소리는커녕 사람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30석 남짓한 직영 정육식당에는 점심 시간인데도 일반 손님은 없었다. 일손이 사라진 직원들만 묵묵히 식사했고 김명규(64) 포천농축산 대표는 오전부터 소주를 들이켰다. 건물 옆 나무에는 '구제역 방역 총력' 플래카드가 걸렸다.

살처분 앞둔 돼지들… 방역 당국이 6일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에서 살처분할 돼지들을 구덩이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구제역 살처분 대상 가축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약품 공급이 끊기자 전국적으로 돼지를 생매장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포천농축산은 구제역 이전 하루 소·돼지 800마리를 도축해 서울과 경기 북부에 공급했으나 구제역 발생 후 방역 문제로 폐쇄됐다. 6일 정부의 도축장 폐쇄 조치 완화로 문을 열었지만 돼지만 겨우 91마리(6일 오후 6시 현재) 도축했다. 이미 살처분된 소·돼지도 엄청나다. 작년 1월 구제역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포천에선 5416마리의 소·돼지를 살처분했으나 올해 포천지역의 살처분 대상 소·돼지는 10배가 넘는 6만마리에 이른다.

김 대표는 "직원 100명에게 월급 줄 걱정이 태산"이라며 "이달에만 2억원 넘게 적자를 볼 것 같다"고 말했다.

포천시 어룡동에서 만난 민병구(52) 나라축산 대표는 더 막막해했다. 포천 농장에서 사육하던 돼지 4500마리를 모두 이미 살처분했고 철원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 2300마리도 살처분 예정이다. 민 대표는 "공장으로 치면 기계에 해당하는 씨돼지들까지 몽땅 죽어 희망이 없다"며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데 2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역 전염이 장기화하면서 '소·돼지의 저주'가 본격화되고 있다. 축산농가의 피해가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면서 일반 소·돼지고기 가격까지 들썩이고 있다.

◆구제역 장기화로 공급 줄어 소·돼지 도매가격 오름세

경기 북부 지역은 소·돼지 도축이 어려운 '축산 마비' 상태다. 정부는 6일까지 살처분한 소·돼지가 전국에서 사육하는 소·돼지 1360만 마리 중 6.9%인 94만8000마리에 이른다고 밝혔다. 경기 북부 연천·파주 등은 지역 대부분의 소·돼지가 살처분 대상이다. 그나마 남은 정상적인 소·돼지도 이동 제한 조치로 도축이 쉽지 않다.

민병구 대표는 "포천에서의 (소·돼지) 공급은 다 끊겼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소·돼지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도매가격도 치솟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작년 11월 1만4000원 선이었던 한우의 ㎏당 정육 도매가격은 1월 첫 주 1만6000원 선까지 올랐다. 돼지 지육(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원료육 덩어리) 도매가격은 11월 중순 ㎏당 4000원대에서 1월 첫주 5000원 선을 넘었다.

◆"설 연휴 전 올랐다가 연휴 후 폭락 우려"

유통업체들은 소·돼지 가격 '사수(死守)'에 나섰다. 이마트는 6일부터 설 명절 수요 촉진을 위해 한우 가격을 최소 한 달 동안 부위별로 10~25%가량 낮추는 행사를 시작했고, 롯데마트는 소·돼지고기 가격을 당분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유통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설 대목을 앞두고 소·돼지 소비 심리 악화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미 구제역 장기화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 위축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1월 초 들어 한우 제품 매출이 5%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구제역이 번진 해당 지역은 더 심각하다. 포천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정육 식당의 매출이 하루 8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제역 사태로 소·돼지 가격은 조만간 오를 가능성이 크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도매가격 상승 영향으로 한우의 일반 소비자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들은 미국산 쇠고기 같은 수입육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설 연휴 후에는 소·돼지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이형우 연구원은 "설 연휴가 지나면 구제역이 줄고 이동 제한 조치가 풀리면서 소·돼지 물량이 한꺼번에 나올 수 있다"며 "이때 농가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으므로 정부가 농가 금융지원을 더 신속히 처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