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규·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헬리콥터 벤' 2차 '통화살포' 시작〈조선일보 2010년 11월 5일 A2면〉

'헬리콥터 벤(Ben)'이 돈을 찍어서 뿌리는 2차 '통화살포'를 시작했다… 양적완화정책이 성공할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양적완화는 어리석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통화정책 전문가인 스탠퍼드대의 존 테일러 교수도 "경기회복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오히려 연준의 신뢰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한동안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경제가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더블딥(double dip·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11월초 6000억달러의 자금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연준의 발표 직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양적완화 정책이 미국 경제의 회복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과 함께, 경기회복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미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동성 함정의 의미와 원인, 그리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동성 함정이란

유동성 함정이란 '유동성(liquidity)'이란 말과 "함정(trap)"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즈(Keynes)가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유동성이란 쉽게 말해서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의미합니다. 화폐가 발행되면 경제 내에서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실물경제 활동의 매개로서 여러 곳으로 흘러다니는 성질에 착안하여 유동성 또는 통화(通貨)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유동성 함정은 중앙은행이 통화 또는 유동성을 아무리 많이 발행하더라도 소비, 투자 등 실물경제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하면 일단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들이 이를 받아서 가계나 기업에 대출을 해줍니다. 그러면 가계나 기업은 이 돈으로 소비를 하거나 혹은 생산설비를 늘리는 투자를 하기 때문에 경기가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제 내에 유동성 함정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경제주체들이 이를 쥐고 있을 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통화가 경제 내에서 돌지 않게 되고 소비와 투자도 증가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유동성 함정이란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나 통화공급 확대 등 팽창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더라도 민간부문의 수요가 증가하지 않아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을 일컫습니다.

유동성 함정의 사례

유동성 함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와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기를 꼽습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중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만큼 생산과 투자가 크게 증가하였으나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요가 감소하고 재고가 급증하여 많은 공장이 도산하였습니다. 더욱이 자산가격 버블이 붕괴되면서 부실채권이 급증한 많은 은행들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등 대공황을 맞게 됩니다.

정책당국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통화공급을 대폭 늘렸습니다. 그러나 경제상황에 불안감을 느낀 경제주체들이 돈을 쥐고 있을 뿐 사용하지 않아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케인즈는 유동성이 전혀 돌지 않는다는 것을 빗대어 유동성 함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또한 최근 유동성 함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기입니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경기 호황이 지속되고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가격 버블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되면서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디플레이션(deflation)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0%에 가까운 수준으로 내리고 통화공급을 늘렸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제에 불안을 느낀 소비자나 기업인들이 당국의 의도대로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않고 일본 경제는 장기간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유동성 함정의 원인과 해결방안

그러면 경제주체들이 화폐를 쥐고 사용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유동성 함정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 원인으로는 극심한 경제침체, 경제에 대한 불안감, 디플레이션, 지나치게 낮은 금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위기와 같이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의 미래에 대해 극심한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팽창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더라도 가계나 기업들은 경제의 미래가 비관적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에 소비나 투자를 증가시키지 않습니다.

또한 경기 침체가 지속돼 물가가 계속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화폐를 사용하려는 유인은 줄어듭니다. 이때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보유하기만 해도 물가 하락으로 구매력이 높아져 화폐의 실질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공황이나 일본의 장기 침체와 같은 유동성 함정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요인들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고 물가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동시에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미국 경제에 이러한 유동성 함정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유동성 함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되면 중앙은행은 경기조절 능력을 상실합니다. 즉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통화정책만으로 경기를 부양시키기는 어렵게 되며,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게 됩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은 경기 회복을 위해 대규모 토목사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뉴딜정책을 사용하였고, 일본도 대규모 건설사업과 함께 민간소비를 촉진시킬 목적으로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동성 함정을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초래한 요인을 해소함으로써 경제주체들이 불안감을 버리고 유동성, 즉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거나 빠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경기 침체기임에도 불구하고 부실기업이나 부실금융회사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불안요인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쉽게 배우는 경제 tip… 디플레이션(deflation)

디플레이션은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로 인플레이션(inflation)의 반대 의미에 해당합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나 1990년대 일본의 장기 침체기에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경제 내에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실질금리가 상승하여 투자 수요가 감소하고, 실질임금 상승 및 실질 부채상환부담 증가로 기업의 생산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됩니다. 이는 금융회사의 자산부실화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 고리(deflationary spiral)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디플레이션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퀴즈

경제가 불황에 빠졌을 때,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가시켜도 소비나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 상황을 ○○○ ○○이라고 합니다.

▲응모 요령: 모닝플러스 홈페이지(morningplus.chosun.com)의 이벤트 코너에서

▲일정: 12월 22일(수) 오후 5시 마감, 12월 24일(금) 당첨자 발표

▲경품: 도서문화상품권 1만원권(25명) 각 1장

〈지난 회 정답: 구매력평가설〉

도서문화상품권 당첨자(강태수 고순옥 곽영균 김미애 김웅배 김현설 김현호 노기현 노진호 박동훈 박자흠 박주경 박지원 백재승 서주희 심정선 오주훈 이봉선 이승복 이은정 이향연 이홍석 정길정 정재열 최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