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이 중국 반체제인사 류사오보 품으로 돌아가자, 성난 중국이 공자상을 제정해 반격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각) 중국 ‘공자평화상’ 선정위원회가 류사오보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공자상을 제정했으며 첫 수상자로 롄잔(連戰) 전 대만 부총통을 선정해 노벨평화상 수상(9일) 하루 전에 시상식을 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에 노벨평화상 시상 불참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공자평화상 수상 선정위원회는 지난 16일 중국 관영매체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회는 "동양의 관점에서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한) 평화상을 정립했다"고 전했다.

롄잔 전 대만 부총통은 '중국 본토와 대만 간 평화 가교를 이었다'는 공로를 이어받아 첫 수상자가 됐다. 롄잔 대만 전 부총통은 국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5년 4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공산당 총서기와 국공 영수회담을 한 인물. 그 전까지 국민당은 지난 1949년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해 대만으로 옮겨간 뒤 중국과 긴장상태를 유지했었다.

다만 롄잔 측은 공자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공식 답변을 피했다. 중국 문화부도 공자평화상 측 주장과 달리 해당 위원회와의 관련성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첫 수상 후보에 함께 오른 인물로는 중국의 시인 치아오 다모, 과학자 위안 롱핑, 판천 라마(티베트교에서 달라이 라마에 이은 서열 2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 등이 거론됐다.

WSJ는 그동안 노벨평화상에 도전하는 여러 상이 등장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37년에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노벨에 대항하는 독일 예술과학상을 제정했다. 그로부터 13년 후에는 소비에트연합이 국제평화상으로 스탈린상을 만들었다. 스탈린상의 첫 수상자는 손문의 미망인인 송경령 등이었다. 손문은 중화민국의 토대가 되는 삼민주의를 제창한 정치인이다. 이후 이 상은 1989년에 레닌평화상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지난 1991년 소비에트연합이 붕괴되면서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