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업계는 담담하고 미국차는 체면치레, 유럽·일본차는 웃었다.'

5일 우리 정부가 공개한 한·미 FTA 자동차부문 추가협상 결과를 두고 자동차 전문가들이 따져본 '손익계산서'다.

이번 추가협상 결과는 우리가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에 상당히 양보했다. 우선 미국산 승용차를 한국으로 수입할 때의 관세를 우리가 4년 먼저 인하하기로 했다. 안전기준은 미국 기준만 충족하면 우리나라에서의 별도 인증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판매할 수 있게 했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얻은 이런 혜택은 미국에 생산거점을 둔 유럽과 일본의 자동차업체들에도 적용된다. 이들이 미국에서 생산한 차를 한국에 판매할 경우,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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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동차 업체가 얻는 이익도 있다. 자동차 부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가 즉시 철폐된다. 따라서 이들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미국 내 현대·기아차 공장에서 만드는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관세:미국산은 즉시 인하, 한국산은 4년 뒤

한국산 승용차를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협정 발효 후 4년간은 배기량에 관계없이 기존 관세(2.5%)가 유지되고, 5년째부터 철폐된다. 미국산 승용차를 한국으로 수입할 때는 기존 관세(8%)를 협정 발효와 동시에 절반(4%)으로 낮추고, 5년째부터 완전 철폐한다. 관세 인하로 인한 효과는 미국 쪽이 훨씬 큰 셈이다.

이 같은 관세 인하는 다른 세금과 영업마진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산 자동차 가격을 협정 발효 후 약 3.7%, 발효 5년째부터는 약 7.4%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예컨대 GM의 캐딜락 CTS 3.6은 현재 6380만원이지만 FTA 발효 직후에는 약 6144만원, 4년이 지난 뒤에는 약 5908만원까지 가격이 인하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안전·환경기준 '미국 기준도 인정'

미국산 자동차를 한국으로 수출할 때 우리의 안전기준을 지켜야 할 의무는 사실상 사라졌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 자동차업체는 한국의 안전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자국 내 기준만 충족시키면 업체별로 연간 2만5000대까지 한국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시장에 4500대 이하를 판매한 미국 업체에 대해서는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도 우리나라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산업연구원(KIET)의 이항구 주력산업팀장은 "미국 안전기준을 사실상 전면적으로 인정함에 따라 국내 자동차업계에 역차별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가격 인하 효과와 환경·안전기준 적용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입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국내 자동차업체 한 관계자는 "미국차는 연비와 소형차 부문에서의 경쟁력이 떨어져 가격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판매가 많이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 들어 10월까지 미국 브랜드 승용차의 국내 판매대수는 전체 수입차 판매량의 8.4%인 6247대에 불과했다.

자동차 부품업계는 큰 수혜가 예상된다. 부품 수출관세(4%)가 발효 후 즉시 철폐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 미국 현지의 현대·기아차 공장은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자동차업계는 한·미 FTA 타결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와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는 "한·미 FTA가 조기에 발효될 수 있도록 비준이 속히 완료되기를 기대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유럽·일본업체 '어부지리'

미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유럽·일본 자동차업체가 적지 않은 혜택을 누릴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도요타·닛산·혼다와 독일의 폴크스바겐·BMW·벤츠는 모두 미국에 공장을 갖고 있다. 이들 업체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를 한국으로 수출할 때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요타의 나카바야시 히사오(中林尙夫) 사장은 한·EU FTA 타결 때 "유럽 공장에서 생산한 도요타 자동차를 한국에 수입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격경쟁력이 좋다면 미국에서 생산한 차를 한국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