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학렬 전 부총리와 그의 부인인 김옥남 여사의 젊은 시절 모습.

"박정희 대통령은 가끔 늦은 밤에 서울 혜화동 김학렬(1923~1972)의 집을 찾았다. 두 사람은 콩나물국에 동동주를 마시며 경제를 논했다. 취하면 '황성옛터' 합창이 터졌다. 김학렬의 부인이 눈총을 주면 박 대통령은 "이봐요. 자네 바깥양반은 내 과외 선생이야. 내가 경제를 배우러 과외 선생 집에 오는데 뭐가 잘못됐어"라며 웃었다."(홍하상著,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 인용)

8일 별세한 김학렬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부인 고(故) 김옥남 여사는 국가 통치자인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거리낌 없이 눈총을 줄 정도로 통이 컸다.

김 전 부총리는 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한 주인공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초기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경제관료다.

고고한 학을 연상시킨다 해서 일본어 '쓰루(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김 전 부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과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경제개발 초기의 난제들을 헤쳐 나간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김 전 부총리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는 국가지도자와 관료의 수준을 넘어 무척 끈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부총리의 아들인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소장은 "당시 경제기획원은 국가 예산을 통과시키는 일을 했는데, 그런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종종 김 전 부총리 집을 찾아와 동동주를 나눴고, 밤을 새워 경제발전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1972년 김 전 부총리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자 박 전 대통령은 빈소를 찾아와 "내가 당신을 죽였다. 술도 많이 먹이고 일도 많이 시키고...평생 나라를 위해 일만 하다 죽었다"며 대성통곡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부총리의 남은 가족들을 위해 구로공단에 작은 공장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김 전 부총리는 독설(毒舌)로도 유명했다. 경상도 특유의 입담으로 부하직원들에게 무차별적인 욕설을 내뱉곤 했다. 결재를 받으러 들어왔던 직원이 호되게 질책을 받은 후 방문인 줄 알고 캐비닛 문을 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 소장은 "아버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딱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박 전 대통령, 또 한 명은 어머니"라고 회고했다.

김 전 부총리에게 욕을 먹은 부하직원은 종종 김 전 부총리 몰래 김 여사를 찾아와 하소연했다고 한다. 부하 직원의 얘기를 들은 김 여사는 김 전 부총리에게 직원을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김 여사는 자녀들이 분가한 이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빌라에 거주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마련해준 공장을 운영해 왔다. 김 소장은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는 부하직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 역할을 주로 맡았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직원들의 가정사까지 서로 의논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셨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고 김옥남 여사는 일본 오사카에서 여고를 마치고 중앙대 가정학과를 졸업했다. 향년 81세. 유족으로는 김정수(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김기수(학림공업 대표), 김영수(이스트우드 대표), 김영현 등 3남1녀와 사위 신희택(서울대 법대 교수), 며느리 이현숙(경찰대 교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