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KAIST 교수·전산학과

중국이 수퍼컴퓨터 분야에서 미국을 눌렀다. 중국이 개발한 '톈허-1A'가 2.507 페타플롭(Petaflop)의 처리 속도를 보여 미국 제품 재규어의 1.75페타플롭을 넘어섰다고 한다. 1페타플롭이란 1초당 1000조 회 계산하는 속도를 말한다. 이 수퍼컴퓨터는 소형컴퓨터로 160년 걸리는 계산을 하루 만에 해냈다.

이는 중국이 컴퓨터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을 따라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퍼컴퓨터는 최첨단 복합 기술의 결정체다. 수퍼컴퓨터는 많은 연산 제어용 칩을 병렬로 연결해 계산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때 핵심 기술은 칩을 어떻게 연결하면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병목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속도를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은 이번에 2만1504개의 칩을 연결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전력 소모와 열 발산이라는 컴퓨터 제작의 주요 난제를 함께 해결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수퍼컴퓨터의 성능은 이를 이용하는 산업의 생산성과 직결된다. 항공기와 자동차 설계, 유전자 분석연구, 기상관측 등 대용량·고속 계산이 필요한 분야에 수퍼컴퓨터는 필수다. 중국 컴퓨터가 미국 것보다 1.4배 빠르다면, 중국이 항공기 설계 시뮬레이션에 10일 걸릴 때 미국은 14일 걸린다는 뜻이다.

또 중국은 컴퓨터 분야에서도 '기술 자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수퍼컴퓨터 기술은 국가 전략기술이다. 수퍼컴퓨터는 돈이 있다고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수퍼컴퓨터 산업을 이끄는 미국이 어느 날 특정 국가에 외교 문제나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퍼컴퓨터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보안과 관련된 인공위성을 외국에서 돈 주고 쉽게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각국은 독자 위성을 가지려고 한다.

컴퓨터 역사를 보면 지금 수퍼컴퓨터는 20년 후에는 책상 위의 PC로 변신하곤 했다. 예컨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PC 성능은 1990년대의 수퍼컴퓨터 성능과 맞먹는다. 지금 독자적으로 수퍼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20년 후에 독자적인 PC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이 거의 모든 제조업을 외국에 뺏겼어도 컴퓨터 산업을 아직도 쥐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고의 수퍼컴퓨터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 컴퓨터 분야에서 다른 나라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퍼컴퓨터 개발은 중단된 상태다. 우리도 개발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행정전산망용 수퍼컴퓨터인 '타이컴 1·2'를 개발했던 나라다. 그러나 상업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구는 중단됐다. 수퍼컴퓨터 국내 시장이 작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주 이유였다. 물론 외국에서 사서 쓰는 것이 지금도 효율적이다. 하지만 수퍼컴퓨터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PC의 근간을 이루는 컴퓨터 분야의 기초과학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PC를 팔지만, 단순한 복사판 제작 수준이다. 자체적인 컴퓨터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퍼컴퓨터는 20년 후를 내다보는 전략 제품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다. 인공위성과 우주발사체를 쏘는 이치와 비슷하다. 미국과 중국의 컴퓨터 '경쟁' 아닌 '전쟁'을 보면서 우리 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