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시 금호동에 있는 광양항 앞바다 한가운데에 최근 거대한 콘크리트 탑 2개가 완공됐다. 대림산업이 시공 중인 국내 최장 현수교(懸垂橋) '이순신대교'의 주탑이다. 현수교는 주탑과 주탑을 굵은 케이블로 연결하고 그 케이블에서 수직으로 늘어뜨린 강선(와이어)에 도로 상판을 매달아 놓은 형태의 교량이다.

지난 2007년 11월 착공해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 이전에 개통할 이순신대교는 광양 금호동~여수 묘도를 잇는 왕복 4차로, 길이 2260m의 국내에서 가장 긴 현수교다.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 주경간장도 154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일본 아카시대교(1990m), 중국 시호우먼교(1650m) 등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주탑 간 거리 1545m는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1545년을 기념한 것이다.

주탑 2개의 높이는 서울 남산(262m), 63빌딩(249m)보다 높은 해발 270m로 덴마크의 그레이트벨트교(해발 254m)를 제치고 지금껏 완공된 현수교 콘크리트 주탑으로는 세계 최고(最高)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남 광양항 앞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이순신대교의 주탑. 현존하는 콘크리트 현수교 주탑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270m에 달한다. 각종 첨단 공법과 신기술이 적용된 이 다리의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는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해를 기념해 1545m로 일본 아카시대교 등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은 이순신대교의 완공 후 예상 모습.

순수 국내기술로 만드는 '한국형 현수교'

이순신대교는 첫 '한국형 현수교'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동안 국내에 건설된 현수교는 외국 엔지니어와 기술을 빌려썼다. 그러나 이순신대교는 대림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기술과 첨단 공법을 동원해 기술 자립을 이룩해냈다.

대표적인 게 케이블이다. 케이블은 현수교의 핵심인 주탑과 주탑을 이어준다. 이번에 개발한 케이블은 피아노줄과 비슷한 지름 5.35㎜의 강선(wire) 1만2800가닥을 촘촘하게 엮어서 만들어졌다. 케이블 2개에 들어가는 강선 길이만 지구를 2바퀴 돌 수 있는 7만2000㎞에 달하고, 5만t의 하중이 가해져도 끊어지지 않는다.

케이블 가설 기술도 독자 개발했다. 지금까지 케이블 가설장비는 일본에서 대부분 빌려 썼다. 서 소장은 "묘도 쪽 해상에 이순신대교를 축소한 370m 길이의 가교를 만들어 수차례 가설장비 테스트를 끝냈다"며 "기술 국산화로 수입대체 비용만 200억원을 웃돈다"고 말했다.

다리 상판은 '트윈 박스 거더(TWIN BOX GIRDER)' 방식이 국내에서 처음 적용된다. 트윈 박스 거더는 비행기 날개 모양으로 거더 중간에 바람 길을 터 일체형 거더보다 내풍 효과가 크고 무게는 가볍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A급 태풍의 2배에 맞먹는 초속 90m의 강풍에도 끄덕없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도로 포장도 두께 80㎜의 일반 아스팔트가 아닌 50㎜의 에폭시 아스팔트로 시공해 다리 하중을 대폭 줄이고 통상 10년인 포장 수명도 30년으로 늘렸다.

헤비리프트 등 신공법 대거 선보여

이순신대교는 건설 과정에서 각종 첨단 공법도 대거 적용하고 있다. 주탑 건설에 적용된 '슬립 폼(Slip Form)' 공법이 대표적. 콘크리트 거푸집을 탈착하지 않고 유압 잭을 이용해 거푸집을 자동으로 상승시키는 공법으로 주야 24시간 연속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있어 일반적인 공법에 비해 50%쯤 공기 단축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순신대교는 주탑 아랫부분의 단면 폭과 두께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모양이어서 슬립 폼 공법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거푸집의 모양을 주탑 높이에 따라 실시간으로 조정해야 했다.

이를 위해 대림산업은 레이저와 위성 GPS를 활용한 24시간 정밀측량을 실시해 형상 관리와 품질을 확보했다.

주탑의 두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2개의 가로보는 '헤비 리프팅(Heavy Lifting)' 공법으로 시공했다. 길이 22m, 무게 1400t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인 가로보를 육상에서 미리 만든 뒤 유압식 기계로 1시간에 4.5~5.5m씩 인양해 270m 높이에 설치한 것. 신공법 덕분에 이순신대교 주탑 공정은 11개월 만에 끝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주탑 높이가 254m인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가 주탑 공정에 30개월, 238.5m 높이의 인천대교도 21개월이 걸렸다. 대림산업 김종인 사장은 "현재 현수교 설계에서 시공·유지관리까지 자국 기술로 소화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일본 등 5개국에 불과하다"면서 "이순신대교는 해상교량 기술 자립이라는 우리 토목학계와 건설업계의 오랜 꿈을 실현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