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국제공항으로 접근할 즈음, 창밖으로 창장(長江) 하구의 누런 물결 너머 붉은색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창싱다오(長興島)에 있는 장난(江南)조선소다. 800t짜리 골리앗 크레인 위에는 '장난창싱(江南長興·장난조선소가 오래 흥한다)'이라는 큰 글씨가 찍혀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 주석이 2004년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쓴 휘호를 확대해 써놓은 것이다.

이 조선소에서는 도크(dock·선박을 건조하는 시설)를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연간 450만t 수준인 건조능력을 2015년에 1200만t으로 늘리기 위한 공사다. 현존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연간 800만t 건조능력)보다 더 큰 조선소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배워, 한국을 앞지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조선업계가 사상 최악의 불황에 빠졌던 2008~2009년. 중국의 광저우(廣州)·상하이(上海)·다롄(大連) 등 동부 연안에 포진한 3대 조선기지에서는 대대적인 확장 공사가 진행됐다. 톈진(天津)과 다롄을 기지로 삼고 있는 중국선박공업집단(CSIC)은 900만t인 건조능력을 1100만t으로, 주장(朱江) 하구의 광저우(廣州) 조선단지는 200만t에서 300만t으로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조선업 불황으로 경쟁국이 설비를 축소할 때 거꾸로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것. 이는 30년 전 한국 조선업계가 선택했던 길이다. 세계 조선업계의 장기불황이 시작되던 1970년대 중반 이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차례로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지었고,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장인 640m 도크를 건설하며 공격적으로 조선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30년간의 끈질긴 추격 끝에 일본을 추월,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은 2003년 선박 수주량·수주잔량(확보한 일감)·건조량 등 3대 지표에서 모두 일본을 눌렀다.

자료: 조선 해운 시황분석기관 클락슨. 그래픽=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중국은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로 올라선 성공 방식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불황 때 조선소를 키우며 집중적으로 수주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중국 조선업체가 외국에서 발주한 선박을 처음으로 수주한 것은 1998년. 글로벌 조선시장에 진출한 지 12년 만에 중국은 수주량·수주잔량·건조량에서 모두 한국을 제쳤다.

중국, 한국의 성공 방정식대로 한국 추월에 성공

"양적으로는 추월했을지 모르나 기술에서는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조선업에서의 '한중 역전(逆轉)'에 대해 한국 조선업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10여년 전 일본 조선업계가 똑같이 했던 말이다. 아이카와 겐타로 당시 일본조선공업협회장은 한국이 수주량에서 일본을 추격하자 "양적으로는 추월할지 모르나 기술에서 따라올 수 없어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은 40년간 군림해온 세계 1위 자리를 한국에 내주었고, LNG·드릴십과 같은 높은 기술 수준이 필요한 선박 분야에서도 한국에 밀리고 있다.

중국이라고 그러지 못할까? 중국 후둥중화조선은 지난 6월 이란 국영석유회사 NITC로부터 척당 2억~2억2000만달러에 LNG선 6척을 수주했다. 중국 조선업체 최초의 LNG선 수주다. 한국과 일본, 유럽만 만들던 이 배를 이젠 중국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중국 조선업의 대약진은 금융위기로 전 세계 선박발주가 80% 가까이 감소하자 중국 정부가 국영 해운사 발주 선박의 72%를 자국 조선업체에 몰아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또 2조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를 무기로 해외선주들에게 파격적인 금융을 제공하는 것도 강력한 유인 요건이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란 NITC의 초대형 유조선 12척을 놓고 한국과 중국이 맞붙었다. 결과는 한국의 완패. 중국 양대 조선그룹인 CSSC와 CSIC가 각각 6척씩 나눠 가졌다. 중국 국영은행이 배 값의 90%를 빌려주는 조건을 제시하자, 한국 업체들은 더 이상 경쟁해볼 도리가 없었다.

선박 건조는 많이 해볼수록 기술력이 쌓인다. 예컨대 3척을 한꺼번에 수주했다면 마지막 세 번째 선박을 건조할 때는 첫 번째 선박에 비해 생산성이 15% 이상 올라가는 게 조선업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중국이 풍부한 수주물량을 바탕으로 건조 경험을 쌓는다면 기술력에서도 한국을 예상보다 빨리 따라잡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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