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용 투자팀장

해외 펀드 광풍(狂風)이 몰아친 2007년 여름 회사원 이모(38)씨는 베트남 펀드에 800만원을 투자했다. 이씨는 비슷한 시기에 중국 펀드와 '물 펀드(물 자원 관련 글로벌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에도 각각 1000만원과 500만원을 넣었다.

이씨뿐만이 아니다. 3년 전인 2007년 10월은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을 돌파했고, 해외 증시도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던 때다. 저금리로 인해 투자할 곳은 마땅치 않았고, 남들이 한다니 너도나도 해외 펀드 투자에 나섰다. 그해 10월 한 달 동안 해외 펀드에만 17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새롭게 가입했다.

해외 펀드 광풍이 휩쓸고 간 지 3년이 지났다. 코스피지수가 1800을 넘어서면서 국내 주식형 펀드는 상당수가 원금을 회복했는데, 해외 펀드는 여전히 참담하다. 이씨의 베트남 펀드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 28.9%. 중국 펀드와 물 펀드 역시 10%와 40% 정도 원금 손실이 난 상태다. 3일 증권 데이터베이스 전문회사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펀드가 만들어진 지 3년 이상된 해외 펀드(425개) 10개 가운데 9개꼴로 원금 손실이 난 상태다. 특히 10개 중 1개는 반 토막 이상 원금을 까먹고 있다.

해외 펀드, 지금이라도 손실을 감수하고 환매해야 할까 아니면 원금 회복까지 마냥 기다려야 할까.

일본 펀드 3년 투자했더니… 원금 '반 토막'

지난 1일 기준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의 3년 수익률은 평균 2.1%를 기록했다. 3년 전에 국내 주식형 펀드에 1000만원을 넣었다면 평균 21만원 정도 수익이 났다는 의미다. 3년 투자 수익이 2.1%라면 은행 정기예금 이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한 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900까지 폭락했다가 급반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특히 코스피지수가 3년 전보다 7% 정도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상당히 선방한 편이다.

반면 해외 펀드는 여전히 큰 폭의 원금 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투자한 중국 펀드(홍콩H지수에 투자하는 펀드)는 3년 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 30.97%다.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투자 펀드 역시 마이너스 11.46%로 부진하다.

작년에 100% 넘게 수익을 낸 러시아 펀드도 3년 수익률은 마이너스 45.35%다. 일본 펀드의 3년 수익률은 마이너스 54%로 지역별 해외 펀드 중에 가장 저조하다. 2006년부터 투자 붐을 일으켰던 베트남 펀드 역시 큰 폭의 원금 손실을 내고 있다.

3년 투자로 수익이 난 해외 펀드는 인도(21.87%)·브라질(14.21%)·중동아프리카(11.93%) 펀드 정도다.

수익률 회복이 부진하자 해외 펀드에서 자금 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41일 연속 순유출(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새로 들어온 자금보다 많은 경우)을 기록하는 등 올 들어 6조5000억원이 빠져나갔다. 중국 본토에 투자하는 펀드와 러시아 펀드 정도만 올 들어 순유입을 보이고 있다.

해외 펀드 원금 회복은 언제쯤

그렇다면 해외 펀드 수익률은 언제쯤 회복될까. 회복이 가능하긴 한 걸까. 투자한 국가의 증시가 반등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신흥국 증시와 선진국 증시 전망이 엇갈린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투자한 신흥 증시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증시(MSCI지수 기준)가 앞으로 20% 정도 추가 상승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특히 한국과 중국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골드만삭스가 예상하는 코스피지수 12개월 목표치는 2300이다. 1일 종가를 기준으로 23% 정도 더 오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증시에 대해서도 '홍콩항성기업지수(HSCEI)'를 기준으로 25% 추가 상승을 예상했다. 대만·인도네시아·싱가포르에 대해서도 12개월 목표지수를 13~18% 상승으로 잡았다.

모간스탠리는 글로벌투자전략 보고서에서 "연말까지 이머징시장은 19% 정도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러시아·한국·브라질·체코 시장에 대해서는 '투자 비중 확대'를, 인도네시아와 태국·콜롬비아 등에 대해서는 '투자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일본과 베트남 증시는 다소 불안하다. JP모간은 "일본 증시의 경우 외환시장 개입이 시중 유동성 확대로 이어진다면 20% 정도 반등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고 예상했다. HSBC는 베트남 증시에 대해 "활발한 산업 생산과 소비재 매출 증가 등 경제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불투명한 기업 회계, 무역 적자, 인플레이션 우려 등의 불안 요인을 감안할 때 베트남 증시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고 분석했다.

끝까지 버틸까? 환매할까?

큰 폭의 원금 손실이 난 해외 펀드와 관련, 전문가들은 투자지역에 따라 대응전략을 달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 전망이 긍정적인 신흥시장 펀드는 급하게 써야 할 자금이 아니라면 당장 환매에 나서지 말고 참고 견뎌보라고 했다. 반면 일본 펀드처럼 선진국 증시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마냥 기다리기보다 지금이라도 펀드를 환매하고 국내 주식형 펀드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메리츠종금증권 박현철 펀드 애널리스트는 "마땅히 투자할 곳도 없는 상황에서 신흥시장 전망은 여전히 밝은 만큼 당장 환매하기보다는 투자기간을 더 길게 가져가보라"고 말했다.

하나대투증권 김대열 연구원은 "펀드는 국내든 해외든 언제든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2007년 해외펀드 열풍이 불면서 보수적인 투자자까지 해외에 지나치게 많은 자산을 투자했던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펀드 투자비중이 높은 국내 투자자들은 자산 재분배가 필요하다"면서 "국내 증시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때 해외 펀드를 팔고 국내 주식형 펀드나 ELS(주가연계증권), 해외 채권형 펀드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품으로 옮겨타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