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논설위원

최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일본의 영유권 분쟁에서 희귀한 광물을 의미하는 '희토류(稀土類)'가 주목을 받았다. 중국 어선의 영해 침범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일본이 처음 기세와는 달리 무기력하게 백기를 든 배경에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희토류는 원자번호 57부터 71까지를 포함해 모두 17개 원소를 가리킨다. 휴대전화·고온초전도체·2차전지·액정표시장치(LCD)·광학렌즈·컴퓨터디스크·특수자석·풍력발전 터빈 등에 없어서는 안 될 원료로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미사일과 레이더 시스템 같은 첨단 정밀병기도 희토류를 빼놓고는 만들 수 없다.

중국은 희토류 전 세계 생산의 97%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세계 경제와 안보에 핵심적인 자원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보다 더 강력한 무기다. 왜 진작 '희토류 쇼크'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일만은 아니다. 희토류는 이름과는 달리 그리 희귀하지는 않다. 희토류 17종 가운데 일부는 납이나 질소보다 더 풍부하다. 매장량이 가장 적은 희토류도 금보다는 흔하다. 중국이 전 세계 추정 매장량의 58%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중국 이외 지역의 희토류만 갖고도 세계 수요를 최소한 수십년 감당할 수 있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희토류 소비량은 연간 13만t으로 구리의 1% 수준이다. 게다가 그동안 중국 지방정부와 민간기업들이 너도나도 희토류 개발에 뛰어든 탓에 공급이 넘쳐났다.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 강화로 시설투자 부담은 늘어났는데 희토류 값은 계속 떨어졌다. 그래서 중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 광산은 대부분 문을 닫아야만 했고 새로운 광산 탐사도 없었다.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에선 이미 몇 년 전부터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러다 작년 9월 중국의 생산·수출 통제로 희토류 값이 뛰기 시작하자 폐광의 생산 재개 등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선진국 업체들이 그린란드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새로운 매장지를 발견했고,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이른바 '도시 광산'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다만 폐광이나 새 광산에서 희토류 채굴이 궤도에 오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10년이 고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일부 희토류는 새 광산을 개발해도 수요를 맞추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래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개발을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내에선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이런 대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작년 말 현재 국내 희토류 비축량은 3t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수요의 하루치 분량도 안 된다. 작년부터 선진국들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데도 정부는 대책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해외 자원개발을 통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려는 노력도 없다. 첨단 IT 제품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그 핵심 자원 확보에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희토류 쇼크' 가능성보다 이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이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