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세 뉴욕특파원

정보통신 산업의 변화를 선도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미래학자로 불리는 폴 사포 스탠퍼드대 교수는 주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앱(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 "정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아이폰을 꺼냈다. 손가락으로 플라이바이(flyby)라는 앱을 터치하자, 미국 공군의 무인 우주위성 'X-37B'의 위치가 떴다. "광도(magnitude)가 4로 표시되어 있으니까 매우 밝다는 것이고, 최대 높이와 체류기간도 나와 있어요. 언제 어느 방향을 보면 볼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죠." X-37B의 존재는 미 공군의 일급비밀이다. 천문학에 미친 천재들이나 비밀스럽게 알았을 내용을 이젠 4.99달러짜리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앱은, 값이 비싸고 배우기도 쉽지 않았던 기존 소프트웨어의 장벽(障壁)을 허물고, 전문성이라는 높은 벽도 뛰어넘는 도구가 됐다. 의사를 대신해서 당뇨병 환자를 돌봐주는 앱, 회계사를 대신해서 세금보고서를 작성해주는 앱, 금융컨설턴트의 역할을 하는 앱 등이 전문가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가도 관람객들은 미술관에서 나눠주던 투박한 헤드폰과 전자기기 대신 간단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큐레이터의 그림 설명을 듣는다.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생활을 지배하는 앱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총아로 각광받는다. 앱 시장은 올 상반기에 22억달러의 매출로 이미 작년 매출의 1.5배를 넘었다. 시장조사 업체인 주피터리서치는 오는 2015년까지 관련 매출이 3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실업률로 미국 전체가 신음하지만, 앱 경쟁에서 승리한 업체들은 직원 모집공고를 내고 있다. 마켓워치는 "지난 20년간 구글 검색어 가운데 '앱 리뷰'만큼 꾸준하게 폭발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는 단어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앱은 IT 비즈니스의 근본 질서를 흔들고 있다. 앱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위계(位階)질서를 바꾸고 있다. 끊임없이 입소문을 만들어내는 앱은 이를 장착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판매를 부추기는 마케팅의 화수분 역할을 한다. 작고 값싼 앱이 비싼 하드웨어 기기를 팔 수 있도록 하는 지렛대 구실을 하는 것이다.

10년 전 닷컴 전성시대에 한국이 앞서 있었으나 앱 혁명 시대에는 뒤처져 있다. 한국은 전화기를 음성통화에서 문자를 주고받는 기기로 전환시키고 미국보다 앞서 소셜네트워킹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주도권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갔다. '탭 탭 리벤지'라는 뮤직게임으로 대박을 터뜨렸던 디즈니 미디어그룹의 모바일 전략 담당 바트 데크렘 태퓰러스 CEO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한 분야의 성공이 다른 분야에선 발목을 잡죠. 한국이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기기 및 비즈니스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초기 성공에 안주했던 게 패착으로 보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전문가들은 스마트 TV 전쟁에서도 기존 TV의 상식을 깨는 제품과 TV 앱이 출현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티브 잡스가 전화기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었듯이 TV의 개념을 바꿔놓을 수 있는 '제2의 스티브 잡스'가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공 뒤의 휴식에 취할 사치를 이 시대는 허락하지 않는다. 더 빨리 변하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게 앱 혁명 시대의 먹이사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