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물질 '그래핀(graphene)'이 미래 신소재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6각형 형태의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인공 나노 물질이다. 자연에도 비슷한 물질이 있지만,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만 구성돼 있고 천연 물질은 적층(積層) 구조라는 점에서 다르다.

당초 그래핀은 터치스크린 같은 전자제품에 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핀이 투명하면서 전도성이 매우 좋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래핀의 활용 영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그래핀의 쓰임새가 많아질수록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국인 과학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그래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탄소가 벌집 형태로 연결된 그래핀

두께가 고작 0.3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한 그래핀은 전기 전도도가 구리보다 100배 좋고 투명하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그래핀의 첫 적용 대상으로 휴대폰과 은행 현금자동인출기의 터치스크린 장치가 꼽혔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평면에서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나노 물질이다. 그림에서는 여러 층의 그래핀이 그려졌다.

터치스크린의 원리는 이렇다. 사람이 터치스크린 화면에 손을 대면, 투명한 화면에 흐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 신호에 변화가 일어난다. 전기 신호의 변화를 감지한 기기의 내장 컴퓨터는 사람이 만진 화면에 위치한 아이콘을 작동시킨다.

지금까지는 ITO(인듐-주석산화물) 물질을 터치스크린 장치의 표면 소재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래핀은 ITO보다 전기가 잘 통하면서 휘거나 늘어나기도 하는 장점이 있다. ITO로 만든 필름은 2%만 휘어도 부서진다. 접거나 휘는 플렉시블(flexible) 디스플레이에 그래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그래핀이 ITO에 비해 가진 단점은 양산 기술이었다. 최근 성균관대 화학과 홍병희 교수팀은 30인치(76.2㎝) 터치스크린이 가능한 그래핀의 양산 기술을 개발했다. 실험실 수준의 양산이었지만 수년 내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도 가능할 전망이다.

시계처럼 손목에 찼다가, 통화할 땐 펴서… 사용자가 통화를 위해 노키아가 내놓은 미래형 휴대폰 ‘모프(Morph)’를 만지고 있다. 모프는 그래핀처럼 휠 수 있는 소재만으로 제작됐다. 사용자는 평상시에는 모프를 시계처럼 손목에 감았다가(작은 사진) 전화가 오면 펼쳐 통화한다.

그래핀으로 중금속 골라내고, 태양전지 만든다

그래핀은 환경 분야로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포스텍 화학과 김광수 교수, 황인철 교수팀은 그래핀을 활용해 독성 물질인 비소를 하천에서 99% 걸러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김 교수팀은 자철석에 산화그래핀을 붙였다. 자철석-산화그래핀은 크기가 10㎚에 불과한 나노 물질이다. 자철석(磁鐵石)은 강한 자성을 가지고 있어 천연자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자철석-산화그래핀 역시 자석을 대면 달라붙는다.

자철석-산화그래핀은 비소에도 잘 달라붙기에 자철석-산화그래핀을 하천에 뿌리면 자석으로 비소를 하천에서 골라낼 수 있다. 김광수 교수는 "물속에 있는 비소를 99.9%까지 제거할 수 있다"며 "이번에 개발한 자철석-산화그래핀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비소 오염도가 높은 국가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래핀은 투명하기에 햇빛을 받아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전지에도 쓰인다.

미국 남가주대학(USC) 전기공학과의 총우 저우 교수팀은 태양전지용 그래핀을 개발했다고 'ACS 나노'에 최근 밝혔다. 다만 저우 교수팀이 개발한 그래핀 태양전지는 틈새 시장을 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태양전지에 비해서 효율이 1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 저우 교수는 "그래핀 태양전지는 휘거나 접을 수 있어서 가정의 커튼에 사용할 수 있다"며 "커튼 태양전지가 휴대폰 같은 가전제품의 전원 공급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핀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도 커져

그래핀의 쓰임새가 터치스크린, 환경 보전, 태양전지로 넓어질수록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도 커진다.

통상 과학분야의 노벨상은 X선 발견, 인터넷 등 인류에게 획기적 변화를 일으킨 과학자에게 수여됐다. 해당 분야에서 3등 안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김필립 교수는 2005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그래핀을 발견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인 김 교수는 꾸준히 그래핀의 속성을 파헤쳐 작년 11월에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그래핀으로 노벨상을 수상한다면 김필립 교수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 기사의 취재와 작성에는 이현수 인턴 기자(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4년)가 참여했습니다.

☞그래핀(graphene)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을 이루며 연속적으로 이어진 나노 물질이다. 그래핀은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며,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한다. 동시에 휘거나 늘어나기도 해 과학자들은 그래핀을 꿈의 물질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