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경기도 성남시가 판교신도시 특별회계에서 전용한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지급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한 데 대해 "성남시가 갚아야 할 돈의 규모를 과장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며 비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4일 "성남시가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돈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지급해야 할 공사비 350억원가량뿐인데 당장에라도 5200억원을 갚아야 할 것처럼 사전협의도 하지 않고 사실을 왜곡했다"며 "이 정도 규모는 성남시의 재정상황을 볼 때 충분히 갚을 수 있는 규모"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 13일 판교신도시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성남시와 LH, 경기도 관계자를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그 결과 당장 올해 말까지 성남시가 갚아야 하는 돈은 공동공공시설비 350억원가량인 것으로 추산했다.

성남시는 판교특별회계에 700억원의 잔액이 있어 현재 시점에서 지급유예를 선언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경기도 성남시는 꾼 돈을 갚지 못하겠다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지만, 14일 시내 분당구 중앙공원에서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내며 공원 정비가 한창이었다. 국토해양부는 이날“성남시가 갚아야 할 돈의 규모를 과장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또 본지가 입수한 성남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성남시가 판교 택지개발 사업으로 벌어들일 것으로 산정한 전체 금액은 1조81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판교특별회계 예산운영 현황을 보면 지금까지 택지 매각대금으로 들어온 돈은 1조5832억원 정도다. 아직 더 들어올 돈이 2300억원 정도 남아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현재 판교특별회계에 남아있는 700억원 정도를 합하면 앞으로 특별회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3000억원 정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성남시는 판교특별회계가 이미 적자가 난 것인 양 말하지만 국토부 설명을 감안하면 지급유예를 선언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닌 셈이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예상보다 지급유예 선언의 파장이 커져 당혹스럽다"며 "하지만 성남시가 빚 갚을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결정할 일인데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성남시, 안 갚아도 될 돈 포함해 지급유예 발표"

이재명 신임 성남시장은 지난 12일 "판교 신도시 조성 사업비 정산이 이달 중 완료되면 LH와 국토부 등에 공동공공시설비 2300억원과 초과수익부담금 2900억원 등 5200억원을 내야 하지만, 이를 단기간 또는 한꺼번에 갚을 능력이 안돼 지급유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개발이익과 지분율 등을 고려할 때 LH가 미리 부담한 공동공공시설비는 최소 350억원에서 최대 1800억원으로, 성남시는 올 연말까지는 350억원만 정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는 앞으로 판교신도시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와 상업시설 등을 건설하는 '알파돔시티' 사업이 끝나고서 이자를 계산해 정산하면 된다는 것이다.

또 국토부는 성남시가 스스로 부담해야 할 초과수익부담금으로 2900억원을 추정한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성남시가 부담해야 할 초과수익부담금은 최소 2100억원에서 가장 많아도 2900억원"이라며 "더욱이 이 돈은 내년부터 어떤 사업을 할지를 정해 4~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나눠 부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남시는 "판교신도시개발에 따른 적정수익률을 성남시가 낮게 책정했기 때문에 공동공공시설비와 초과수익부담금 액수가 국토부 발표금액보다 많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적정수익률은 개발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개발주체인 성남시와 LH가 나눠갖는 비율인데, 적정수익률이 낮아지면 판교개발 관련 자금이 많이 필요해지고 공동공공시설비와 초과이익부담금을 많이 내야 한다. 성남시는 "판교신도시 기반시설 조성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아지는 게 시민들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수익률을 낮게 책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과이익부담금을 수년간에 걸쳐 나눠 내도 된다는 국토부 설명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올해 공동공공시설비로 350억원만 내면 된다는 국토부 발표와 판교신도시 개발비를 늘리려고 올해 갚을 빚을 많이 계산했다는 성남시 해명을 보면 성남시가 올해 갚아야 할 부채를 부풀려 성급히 지급유예를 선언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국토부는 성남시가 전임 시장의 실정을 부각하기 위해 판교신도시 사업을 끌어들여 사태를 과장한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요불급한 사업 늦춰도 2000억 확보 가능

전문가들은 성남시가 지급유예라는 최악의 극단적인 상황을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장 시급하지 않은 사업 추진만 늦추더라도 추가로 2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성남시는 수정구 태평동 3만7000㎡ 부지에 분수광장, 생활체육시설 등을 갖춘 '밀리언' 파크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총 사업비는 약 301억원이 책정됐으며 올해 배정된 예산만 217억원이다. 중원구 성남동·중동 일대에 들어설 예정인 '웰빙대공원'의 경우 총 1076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재명 시장측은 자신이 지난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은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제1공단 공원화 사업 등 기존 공약을 축소하거나 변경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주요 공약인 제1공단 전체 공원화, 시립병원 건립 등에 들어가는 예산만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1공단 전체 공원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기존 도시계획을 변경한 뒤, 민간사업자로부터 다시 토지를 매입해야 한다.

☞공동 공공시설비·초과 수익부담금

성남시가 지급유예를 선언한 항목은 '공동 공공시설비'와 '초과 수익부담금' 두 가지다. 공동 공공시설비는 판교신도시를 건설하면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도로·상수도를 짓는데 미리 부담한 공사비다. 원래는 판교 사업의 공동시행자인 성남시와 LH가 지분율에 따라 나눠 부담해야 한다. 판교 사업으로 수익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남으면 LH가 이 돈을 모두 부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남시와 나눠 부담하는 조건이 있다.

초과 수익부담금은 성남시와 LH가 판교신도시에서 땅을 팔아 남은 돈(수익)이 '적정 수익' 이상으로 많으면 내 놔야 하는 돈이다. 이 돈으로 성남시의 도로와 업무용 시설 등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판교신도시 사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결정할 수 없어 공사비를 얼마씩 부담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다. 또 초과 수익부담금 역시 두 기관이 가져갈 수 있는 적정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남는 돈으로 어떤 사업을 할지도 결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