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일본인·몽골인 등 '북방계 아시아인'의 공통성이 질병 유전자 분석으로 처음 확인됐다.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는 북방 아시아 인종인 몽골의 부랴트(Buryat) 민족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서구에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는 일어나는 '정상 안압 녹내장' 유전자군(群)을 발견했다고 11일 밝혔다.

정상 안압 녹내장이란 안압(눈의 압력)이 정상인데도 녹내장이 발병하는 현상이다. 서구인들은 일반적으로 녹내장에 걸리면 안압이 높아진다. 하지만 북방계 아시아 인종인 한국·일본 등에서는 정상 안압 녹내장 현상이 빈번해 질환의 원인이 민족적 특성, 즉 유전적 원인에 있을 것으로 의학계가 추정해왔다.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 연구팀은 2003년부터 몽골 고립 민족인 부랴트인 3000여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번 성과를 올렸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전체 약 2만5000개의 인간 유전자 중 한국·일본인과 부랴트족이 공통으로 가진 정상 안압 녹내장 관련 유전자 100여개를 추려냈다.

연구팀은 부랴트인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정상 안압 녹내장 유전자군 외에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질병 관련 유전자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바로 고지혈증·골다공증 억제 유전자이다.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몽골인들은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한다. 그러면서도 예상과 달리 고지혈증(혈관에 지방이 많아서 고혈압을 일으키는 병)이 적었다. 또 부랴트 민족은 노인이 되어도 골다공증에 걸리는 일이 드물었다.

몽골 부랴트 민족이 사는 다쉬발바르의 지역의 한 학교 교사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부랴트 민족은 우리와 동일한 게놈 정보가 많아서 얼굴 생김새도 우리와 비슷하다.

연구팀은 이 사실에 주목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고지혈증·골다공증을 억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유전자들을 부랴트인들에게서 찾아냈다. 서정선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은 "관련 유전자 100~200여개씩을 찾아냈다"며 "6개월 안에 그중에서 정확한 억제 유전자들을 추려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부랴트인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들이 다른 민족과는 거의 교류가 없는 오지에 살면서 오랫동안 순수한 혈통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혈통이 순수할수록 게놈 분석이 쉽다. 이들이 사는 다쉬발바르(Dashbalbar)는 몽골의 동쪽 주(州)인 도르노트(Dornod)의 주도(州都) 초이발산(Choybalsan)에서도 약 180㎞ 떨어진 오지(奧地)이다.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는 "외진 곳에 살고 있는 부랴트 민족은 북방 아시아 인종의 게놈 분석에 다시 없는 보고(寶庫)이다"고 말했다.

본지와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는 공동 기획 '아시안 게놈로드'를 통해 올해 한국·몽골에서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으며 향후 터키·카자흐스탄 등 다른 아시아 민족의 유전자 분석도 공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