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번호 앞의 국번 '010'때문에 국민들이 쓸데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옛 정보통신부가 2004년부터 '010으로 강제 통합'을 실시했는데 7년을 시행한 뒤 보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음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공장용 수입 배터리를 파는 회사에서 영업하는 이 부장은 휴대전화기에 번호 1000개를 기록해놓고 있다. 이것은 '영업 무기'다. 자기 전화번호를 등록한 사람은 전화를 못 받아도 금방 답 전화를 했다.

그는 6개월 전 "010으로 강제 통합된다"는 말을 듣고 번호까지 010으로 바꿨다. 그런데 통화가 안됐다. 저장된 번호가 아니면 스팸 전화로 생각하는 고객이 많았다. 몇 번 문자를 보내야 답을 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번호 이동 제도와 010 번호 통합 정책이 시작된 2004년 1월 서울 용산전자 상가에서 고객들이 휴대폰을 고르고 있다.


정책 목표는 1위 사업자 견제

옛 정보통신부는 2004년부터 빠른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3세대 휴대전화의 국번은 '010'으로 하며, 3세대 휴대전화가 80%를 넘으면 강제 통합 일정을 잡는다고 했다. 기술적으로 기존의 번호를 써도 3세대로 가는 데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도 강제로 이런 정책을 편 것이다. 적어도 2000만명이 010으로 전화번호를 바꿨다. 정부의 목표는 SK텔레콤으로 쏠린 가입자 수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만 불편하게 해서 공급자만 편하게 하는 이상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마치 세금 정책,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에서 평준화나 분배를 강조했던 것과 같이 밀어붙였다.

정부는 01로 시작되는 번호가 모두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번호가 모자라므로 전화는 010으로 몰아서 쓸 수 있고, 010으로 통일하면 뒤의 8자리만 누르면 통화가 된다는 점도 주장했었다.

모든 목표 달성 못 해

실제로 010 사용자가 3900만명으로 80%를 넘은 현재를 보면 이 중 달성된 목표가 하나도 없다. 번호 이동제도로 인한 SK텔레콤 가입자의 감소 효과는 있었지만 010 통합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휴대전화 사업자들의 의견이다.

또 휴대전화가 TV, 인터넷 등 모든 기능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01로 시작하는 다른 국번은 필요 없게 됐다. 요즘은 휴대전화기가 똑똑해지면서 대부분 이름을 검색해 전화를 건다.

오히려 010으로 통합을 해놓으면 9999만9999개의 번호로 한정된다. 자칫하면 휴대전화 사용자를 다 못 수용하지 못한다. 현재 휴대전화 가입자는 4858만명인데, 한국인구는 4977만명이다.

갓난아이까지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두 대, 세 대를 갖고 있거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만큼 증가 여지가 많다. 게다가 만약 통일이 되면 번호가 더 필요하다.

010이 아닌 번호를 쓰게 해야 할 판이다. 온 국민은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문자를 보내고 명함을 다시 파고, 간판을 바꾸느라 난리 법석을 떨었지만 정책의 장점이 전혀 없었다.

정부 기관 설문조사 불만 일색

방송통신위원회가 010 번호가 전체의 80%를 넘자 최근 연구 용역을 맡긴 결과도 휴대전화 사업자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이 번호 통합의 '무용(無用)'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용역을 맡은 정부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조사 결과 010으로 안 바꾼 사람들은 52%가 정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61%가 번호 통합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꾼 사람들은 번호가 바뀌었다는 걸 알리는 데 최대 1년이 걸렸다는 사람이 94%, 6개월 이상이 걸렸다는 사람이 78%였다.

강제로 010으로 바꾸려면 '번호의 소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와야 하는데 소유권은 아니더라도 '점유권'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는 법률 논란도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사업자, 소비자 단체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모든 가능성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살펴보는 내용에는 '3세대 전화는 꼭 010 번호를 써야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아무리 정책이 잘못됐다고 해도 7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방통위는 괴로운 상황이다. 정부 정책의 신뢰가 깨진다는 점에서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 소비자만 괴로워진다. 한번 박힌 전봇대가 빼기 힘들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