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안준호 기자

이달 16일 세계 최고층 빌딩(828m)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빌딩 앞에는 '공사 중, 출입금지' 표지판이 서 있었다. 주변에는 출입을 막는 줄이 둘러쳐져 있었다.

124층에 있는 전망대를 오가는 승강기의 운행도 중단됐다. '두바이 몰'에서 부르즈 칼리파 전망대로 연결되는 통로는 아예 폐쇄됐다. 올해 초 문을 연 전망대는 잦은 승강기 사고로 2월 7일부터 문을 닫고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한 직원은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른다"고 했다. 부르즈 칼리파에 이달 오픈할 예정이던 '조르지오 아르마니 호텔'의 개장도 다음달 22일로 미뤄졌다. 부르즈 칼리파에 입주해 문을 연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두바이 현지 여행사에 근무하는 김영철씨는 "부르즈 칼리파의 모습이 두바이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두바이에서는 각종 대형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중단됐기 때문이다.

과거 부르즈 칼리파는 '부르즈 두바이'라 불렸다. 그러나 작년 말 두바이가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하고 아부다비가 두바이에 100억달러를 지원키로 한 뒤 UAE연방 대통령이자 아부다비 통치자인 셰이크 칼리파의 이름을 따서 '부르즈 칼리파'로 이름이 바뀌었다.

180만명이던 두바이 인구 지금은 150만명

17일 오후 두바이의 중심 거리인 '셰이크 자이드 로드'는 퇴근 시간대인데도 한산했다. 해변을 따라 주상복합 건물이 길게 늘어선 '주메이라 비치' 단지는 오후 7시가 넘었는데도 불 켜진 곳이 거의 없었다. GS건설의 UAE 사업을 총괄하는 승태봉 상무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중단·취소되면서 해외 기업과 두바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제3국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두바이를 떠났다"며 "주택과 오피스 등의 공실률이 70%에 이른다"고 말했다.

두바이 국영 개발회사인 두바이월드는 작년 10월 전체 인력의 15%(1만2000여명으로 추정)를 감원했다. 두바이에 진출했던 GS건설·대우건설·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사들도 사무소를 아부다비로 옮겼다. 180만명에 달하던 두바이 인구는 금융위기 이후 150만명으로 줄었다.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 교민 이모씨는 "고급 주택의 경우 70억원대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30억원대로 반토막이 났다"며 "침실 3개를 갖춘 주택 임대료도 연 8000만원에서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UBS은행은 내년까지 두바이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30%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두바이는 세계 최고층 빌딩인‘부르즈 칼리파’등 초고층 빌딩들을 잇달아 세우며‘사막 위의 기적’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두바이 경기는 좀체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공사 중단, 방치된 건물

두바이에선 각종 중장비가 동원돼 도로 등 기반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철골구조만 드러낸 채 공사가 중단된 현장도 곳곳에서 보였다.

인공섬인 '팜 주메이라' 초입엔 '팜 주메이라 빌리지 센터' 부지가 시멘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땅만 파놓은 채 방치된 이곳은 두바이월드의 자회사인 나킬(Nakheel)이 지상 47층짜리 주상복합 2개동과 쇼핑몰, 백화점, 극장 등 복합쇼핑몰을 건설할 예정이었다. 2008년 말 삼성물산이 10억80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했지만 나킬은 작년 4월 계약을 취소했다.

부르즈 칼리파 등이 있는 비즈니스 베이 지역에는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건물이 여럿 눈에 띄었다.

두바이 GDP의 2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도 동반 침체 중이다. 7성급인 돛단배 모양의 '부르즈 알 아랍' 호텔은 평소 객실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작년 초부터 관광객이 급감해 패키지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한 관광 가이드는 "2년 전만 해도 방이 없다던 호텔들이 이젠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상품을 판매한다"며 "객실료도 30~40% 떨어졌다"고 말했다.

두바이 도심과 외곽에서는 시멘트와 철골구조만 드러낸 채 공사가 중단된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띈다.

대표적 관광지인 아틀란티스 호텔의 수족관도 한산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몰인 두바이 몰을 찾는 관광객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 명품 매장 직원은 “금융위기 후 고객이 30% 정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발버둥치는 두바이

두바이 정부는 최근 부모와 동반한 16세 이하 어린이에 대해 항공료와 호텔 숙박비, 놀이공원 입장료 등을 받지 않는 ‘공짜’ 여행 프로그램을 올 5월부터 운영키로 했다.

두바이 시민들은 UAE의 수도인 아부다비와 시속 200㎞의 철도로 연결하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유니언 철도(Union Railway)는 올 8월 입찰을 실시, 연내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130㎞ 거리인 두 도시가 철도로 연결되면 1시간 내에 왕래가 가능해 출퇴근도 할 수 있어 그나마 두바이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현재 두바이엔 주택이 남아돌고, 아부다비엔 주택이 부족한 형편이다. 현지인들은 두바이의 금융·물류·관광 인프라가 철도를 통해 아부다비의 석유자원 및 자금과 접합되면 시너지(결합) 효과를 내 두바이의 경기회복이 다소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바이는 마피아가 세운 마천루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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