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나라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출발한 기업이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한 후 납골함에 유골을 보관까지 하는 원스톱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지난 1999년 9월 ‘반려동물 장례업’이라는 업종에 국내 처음으로 뛰어들며 이 업종을 창시했다. 이 회사의 설립자인 박영옥 사장은 실제로 키우던 강아지가 죽자 위 상황과 똑같은 고민을 했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용감하게 창업에 나섰다.

자본금 500만원을 들고 박 사장은 서울대 수의대에 있던 동물화장시설(소각로)을 빌려 소박하게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 시작 1년여 만에 생각지도 못하게 판이 커졌다.

“당시 각 지자체에서 소형 소각로 폐쇄 정책을 내놓는 바람에 서울대 소각로를 쓸 수 없게 됐죠. 그래서 대안을 찾다가 2001년에 현재 페트나라가 있는 경기도 김포에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었습니다. 소각로도 도입하고, 납골시설도 다 마련했죠.” 500만원으로 시작했던 사업이었건만 투자비가 졸지에 1억5000만원으로 엄청나게 불어났다. 가진 돈이 부족해 소상공인 자금도 빌리고, 지인들의 도움도 받아 어렵게 자금을 충당했다.

초기 홍보는 동물병원 공략

초기 홍보는 어떻게 했을까? "주로 동물병원들을 돌아다녔죠." 아무래도 아픈 동물들이 찾아오는 곳이니 잠재 수요자가 그곳에 있을 거라는 짐작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반려동물 키우는 이들 사이에서 페트나라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초창기에는 하루 두 팀 정도의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와 한 달에 10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놀랍게도 3개월 만에 흑자가 시작됐다.

손님은 꾸준했다. 하지만 시장이 확 커지지는 않고 현상 유지만 되는 수준이었다. 몇 년 동안 그저 비슷한 수준의 실적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버텼다. 2000년대 후반 무렵, 드디어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문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확산됐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이 1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사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어요." 반려동물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람들이 페트나라로 몰려든 것이다.

관련법이 정비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실 관련법이 생기기 전까지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그냥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것은 불법이었어요. 하지만 반려동물 문화가 사회적인 큰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2008년에 동물보호법에 동물장묘업을 두는 규정이 새로 생겼죠."

현재 페트나라에는 하루 평균 다섯 팀을 소화하는데, 많을 때는 10여 팀도 온다. 평일, 주말 구분도 없다. 죽음은 휴일을 피해서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사장은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한다.

페트나라 건물에는 소각로와 납골시설 등을 두고 있지만 사람을 위한 장례식장의 침울한 분위기는 없다. 납골함을 둔 공간은 마치 카페 같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편안한 소파와 대형 벽걸이 TV도 걸려 있다. 세 마리의 탐스런 고양이들이 안치된 반려동물을 보러온 고객들과 어울리며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박 사장은 "페트나라를 비롯한 반려동물 장례 업체가 현재 6개사가 있는데, 신규업체가 새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소각로와 납골시설 등 초기 투자비가 적지 않고, 소각시설을 두기 때문에 환경법에 민감한 측면도 있어요. 어쨌든 납골시설이라 사람들이 별로 반겨하는 업태가 아니라서 건물 마련하기도 까다롭죠."

▷▶▷ 페트나라를 찾는 반려동물들은 80% 이상이 11~13살에 숨을 거두며 자연사한 행복한 동물들이라고 한다. 개가 80%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고. 다음으로 고양이가 15%, 나머지 5%를 차지하는 반려동물은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 페릿, 앵무새 등이다.

장례 요청이 오면 서울 및 수도권은 직접 픽업 서비스를 하고, 옵션으로 반려동물용 수의를 입히거나, 관도 제공한다. 장례식장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에 따라 3곳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기본 화장비용은 20만원(체중 5kg 이하).

몇 년 전 해외토픽에서 한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가 수십 년이 지나 남편 사망 후 배달되면서 감동을 준 사연이 소개된 일이 있다. 우편배달 과정에서 누락됐던 편지가 우연히 발견되어 뒤늦게 주인을 찾아갔던 것이다.

누군가 수 년~수십 년 전에 보낸 편지를 받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현실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사가 있다. 타임캡슐 편지배달 업체인 ‘노란우체통’이 그곳이다.

노란우체통은 포장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전우명 사장이 ‘투잡’으로 운영하는 회사다. 전 사장은 2000년대 초에 첫사랑으로부터 인터넷으로 쪽지를 받은 후 ‘그리움’이라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됐고, 이것이 노란우체통 사업의 계기가 됐다.

2003년에 이 사업에 대한 구상에 들어간 그는 1년여 이상 기획단계를 거쳐 2004년 중반에 사무실을 열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편지 발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편지를 보관할 건물 부지 물색에 나섰다.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다가 터를 잡은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현 노란우체통 본사 자리다. 약 6600㎡쯤 되는 부지에 건물과 함께 나무, 꽃도 심어 가꿔놨다. 투자비는 4억3000만원.

편지 배달이 주업이라면 교통이 편한 곳이 낫지 싶은데, 굳이 오지 산골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전 사장은 “노란우체통의 편지는 ‘소식 전달’이 아니라 ‘마음의 느낌’을 전하는 편지이기 때문에 일부러 깊은 산골을 택했다”며 “서울에서 발송한 편지와 경북 봉화군에서 보낸 편지는 느낌이 좀 다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몇 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노란우체통은 드디어 2006년 12월에 정식으로 오픈하고 고객들이 보내온 편지 보관 업무에 들어갔다. 자체 쇼핑몰 없이 1300K, 텐바이텐, 바보사랑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에 입점해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20년 이후에 받는 편지도 있어

노란우체통의 편지 상품은 1년(1만원), 3년(1만5000원), 5년(2만원), 10년(3만원), 20년(5만원) 등으로 분류하는데, 만약 3년짜리 편지를 구매했다면 3년 이내의 기간 중이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도록 배달 날짜를 임의로 지정할 수 있다. 원하는 기간의 편지를 택하면 이 회사가 규격화한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고객의 집으로 배달되고, 여기에 편지를 써서 노란우체통 본사로 보내면 회사가 그 편지를 보관했다가 고객이 원하는 시기에 맞춰 배달해준다. 만일 편지 발송 시점 전에 받을 사람의 연락처가 바뀔 경우 노란우체통 홈페이지에서 받을 사람의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 등을 직접 수정하면 된다.

노란우체통은 이제 갓 3년을 넘긴 상태다. 이는 오픈 초기에 들어온 3년짜리 편지들의 발송이 시작됐다는 뜻. 1년 편지는 받는 이들의 주소나 연락처 변경 요청이 별로 없었는데, 3년 편지들은 받는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거의 다 바뀌었더란다. 연인들이 헤어지는 등의 비극이 생기면 배달을 앞둔 편지의 폐기 요청도 온다. 작년 12월에는 10여 통 정도의 편지 폐기 요청이 있었다고. 연인들은 대개 1년 편지를, 3~5년 편지는 부부가 많이 주고받는다고 한다.

노란우체통에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중에는 직접 먼 경북 봉화의 노란우체통을 찾아와 편지를 써서 맡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아예 본사에 편지를 쓸 수 있는 카페처럼 꾸민 공간도 마련했다. 주말에 보통 4~5팀이 방문하는데, 사업 시작한 이래로 방문객이 전혀 없던 주말은 한 번도 없었단다.

"노란우체통에 한번 와보는 걸 연인과의 이벤트로 생각하고 오기도 하고, 이런 곳에 한번쯤 와보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요. 혼자 와서 편지를 쓰고 근처에서 하루 묵고 가는 나 홀로 여행객들도 많아요." 노란우체통이 이 지역경제에 자그마한 기여도 하는 셈이다.

낭만적인 사업이긴 한데, 노란우체통은 아직 적자 상태다. 편지 단가가 낮으니 박리다매가 이뤄져야 하지만 아직 이용객이 충분히 많지 않아서다. 그러나 기업에서 단체로 편지를 주문하기 시작해 앞으로는 차차 실적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년에 웅진그룹과 농심 등 대기업이 사내 직원 연수용으로 쓰겠다며 노란우체통에 편지를 대량 주문했다고 한다. 연수 마지막 날에 직원들이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수년 후에 받아보는 과정을 추가했단다.

"저는 본업인 포장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어요. 노란우체통은 한 3년이면 손익분기점에 오르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는데 사업이 생각보다는 천천히 가네요(웃음). 하지만 시작한 동기가 이걸로 떼돈을 벌자가 아니라,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인 데다 사람들이 이 편지로 울고 웃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감동을 다루는 비즈니스여서 그런지 수익성과 별개로 전 사장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 보였다. 하지만 노란우체통의 흑자 전환 시기가 요원하다면, 20년짜리 편지를 판매하는 회사가 정작 자사의 20년 후를 보장할 수 없는 건 아닐까?

"포장디자인 회사가 잘 굴러가는 걸 보면 저도 비즈니스에 그리 둔감한 사람은 아닌데요, 노란우체통의 비전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사회에 순기능도 하면서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는 일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다만 사업의 특성에 따라 궤도에 오르는 시간들이 다 다른데, 노란우체통은 중장기적으로 봐야 할 아이템이라는 생각이에요."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었다. 전 사장은 "나는 노란우체통이라는 나무를 심고 가꿀 것"이라며 소박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나무를 심으면 나중에 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 열매를 딸 수도 있어요. 노란우체통도 비슷한 마음으로 보고 있어요. 미약하긴 하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노란우체통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제가 힘들어져서 다른 누군가가 인수하게 된다 해도 그때쯤이면 노란우체통도 지금보다는 더 자리를 잡은 후가 되겠지요. 저는 그때까지 초기 기반을 다져놓겠다, 그런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바다에서 할 수 있는 레저, 하면 대부분 해수욕, 낚시 정도를 떠올린다. 펀코스트는 여기에 ‘요트 타기’라는 아이템을 하나 더 추가한다. 인천 남항부두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펀코스트는 펀코스트 1호와 2호 등 두 대의 요트를 운영하고 있다.

“언젠가 강으로 제트스키를 타러갔다가 끌어주는 배를 보고 요트 임대 사업을 구상하게 됐어요. 해외에는 멋진 요트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요트를 타본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레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라는 점 등을 감안해 시작하게 됐어요.”

펀코스트는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김주수 지사장이 사업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박용호 대표가 지분을 다수 투자해 동업으로 시작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요트를 구입하려고 국내외 시장을 알아봤는데, 국내 실정에 맞춤한 요트가 없어서 결국 국내 조선 업체에 주문제작했다고 한다. 2008년 초 제작에 들어간 요트는 2009년 2월에 완성됐고, 다음 달인 3월부터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요트는 한 대당 제작비만 약 13억원이나 들었다. 기본 투자비가 만만치 않은 사업인 셈이다.

“국내에서 요트 문화가 워낙 생소해서 영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죠.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요트를 태워주고 요트 탄 기분을 느끼게 해 준 후, 주변에 소문내줄 것을 부탁한 게 마케팅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이후 인터넷에 검색광고를 시작하면서 고객들의 연락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고객들의 60%는 개인들이다. 친구나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러오는 경우가 많다. 법인 고객들도 적지 않다. 접대나 야유회 등을 목적으로 요트를 찾는 케이스다. 한겨울에는 출항이 뜸한 편이지만 날씨가 좋은 6~9월에는 월 20~30회가량 출항했다.

“생소한 사업을 하다 보니 벤치마킹할 대상이 마땅치 않아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요트 임대 가격의 경우, 처음에는 인원 수 무관하게 1회에 100만원으로 잡았다. 승선 인원이 1명이든 20명이든 배가 한 번 출항하는 데 드는 인건비, 연료비 등 비용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인당 3시간에 15만원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바다로 나갔다가 근해를 한 바퀴 돌아오는 데 3~4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였다. 요트에서 제공하는 음식도 고객 성향을 감안해 수준을 높였다. 처음에는 신선한 회와 해산물 정도였는데, 랍스타, 킹크랩 등을 추가했다고.

이용 단가가 낮지 않은 수준이라 고객층도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김 지사장은 이른바 ‘귀족 마케팅’에도 신경을 쓴다.

“모 대형 백화점의 상위 1% 고객들에게만 발송하는 DM을 통해 펀코스트를 소개해서 그걸 보고 고객들이 찾아오신 적도 있어요. 한 시중은행 PB지점의 의뢰를 받아서 한 달에 두 번씩 그 지점의 VIP 고객들을 모시고 출항하기도 하죠.”

김 지사장은 “영업에 들어간 지 이제 1년이다 보니 아직은 사업의 틀을 잡아가고 있는 단계”라며 “내년까지는 고생한다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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