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칠레 지진, 아이티 지진으로 참사를 겪은 국가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정부·시민단체를 통한 기부뿐 아니라 개인들도 온라인 인맥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SNS)를 통해 이재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성금을 모으고 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이웃에게 빨리, 집단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일까?

선행(善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꼬마 아이가 "세 명에게 먼저 선행을 베풀면, 세상 전체가 바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라며 폄하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이 말이 실제 사회에서 통한다는 연구가 8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th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렸다.

제임스 파울러(Fowler)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샌디에이고) 정치과학과 교수와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Christakis) 하버드대 의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공공재 게임(public-goods game)을 통해 기부가 전파되는 경로를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했다.

공공재 게임이란 각 개인 구성원이 내놓은 금액을 나중에 2배로 불린 뒤 집단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나눠 갖는 게임이다. 집단으로서는 모든 게임 구성원이 돈을 내놓는 게 이상적이지만, 개인으로서는 타인의 기부에 무임승차하는 게 이익이다.

두 교수는 이 게임에서 서로에게 돈을 주며 협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구성원 중 한 명이 먼저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도록 했다. 그러자 연쇄적인 '기부 파도'가 이어졌다. 돈을 받은 이가 아무 지시도 없었는데 다음 게임에 참가하는 또 다른 이들에게 돈을 건넨 것. 연구팀에 따르면 이 같은 '기부 파도'는 처음 기부 이후 3회 동안 추가로 이어졌다.

게다가 기부를 받은 이들은 받은 돈 외에 다른 이들에게 추가 기부를 하기도 했다. 결국 다른 이들에게 돈을 주는 분위기가 집단 전체로 이어지게 된 것. 실험 참가자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었으며, 같은 참가자와 두 번 게임에 참가하는 경우도 없었다.

파울러 교수는 "현실에서는 또 다르겠지만 적어도 실험상으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어떤 방식으로 선의가 전파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며 "사회가 인간에게 꼭 필요함을 보여준 연구"라고 말했다.

상대방 행동 따르는 본능이 원인

그렇다면 인간은 왜 어려움에 빠진 이를 도울까? 영국 레스터대 연구팀은 최근 번갈아가며 서로를 돕는 행동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며, 특히 다른 이의 행동을 똑같이 답습하는(tit-for-tat) 본능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번갈아가며 서로의 편의를 봐주는 행동은 진화의 산물로, 일부 동물에도 나타난다. 유인원들이 털을 서로 다듬어주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남극의 펭귄 부부는 한 마리가 알을 품거나 새끼를 돌보면, 다른 한 마리는 사냥을 위해 위험한 바다로 뛰어든다. 두 펭귄 부부는 번갈아 두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서로의 행동을 따라 하는 성향이 사회적으로 선의를 전파한다는 것이다.

앤드루 콜먼(Colman) 레스터대 교수는 "한 종에서 유전적으로 다른 여러 개체가 존재하는 경우, 이들 중 일부가 우연히 선의를 보이면 다른 개체들이 이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학자들은 이 같은 전파 구조가 선한 행동뿐 아니라 악한 행동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파울러 교수는 "실험상으로는 선한 행동이건, 악한 행동이건 똑같은 속도로 사회 전체로 확산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