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오모(45·서울 잠실동)씨는 새로 구입한 고급세단을 몰고 지난 주말 강원도에 갔다가 큰 낭패를 봤다. 체인이나 스노타이어를 끼지 않고 갔던 게 실수였지만, 다른 차량보다 자신의 차가 눈길 주행에 유독 취약했기 때문이다. 다른 중소형차들이 무리 없이 주행하는 눈길에서도 오씨의 차는 뒷바퀴가 헛도는 바람에 전진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오씨는 여행을 취소하는 것은 물론 견인차까지 불러야 했다.

최근 불어닥친 폭설과 한파로 전국의 도로가 얼어붙는 바람에 차량 운행에 큰 불편이 빚어졌다. 특히 일부 고급세단이나 수입차들의 경우, 국산 중소형차들이 주행할 수 있는 눈길에서도 아예 발이 묶이는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는 국산 일부 고급세단이나 수입차의 경우, 눈길에 가장 약한 후륜구동 방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가인 폴크스바겐 나윤석 부장은 "자신의 차량의 구동방식을 잘 알고 이에 따른 대처법을 파악해 둬야만, 눈길사고 등으로 인명이나 재산상의 손실을 입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눈길에서는 뒤에서 미는 후륜구동보다 앞에서 끄는 전륜구동이 유리

엔진 힘을 뒷바퀴에만 전달하는 후륜구동방식은 엔진은 앞에 있고 구동축이 뒤에 있기 때문에 앞·뒤 차축의 무게배분이 5대5로 비슷해 운동성능이 뛰어나다. 또 구동은 뒷바퀴가 담당하고 방향전환은 앞바퀴가 담당하기 때문에, 방향을 전환할 때 전륜구동에 비해 날카로운 맛이 있다. 또 전륜구동 차량에서 발생하는 피시테일(Fish Tail·차량의 뒷부분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 현상이 없어, 차량 뒷좌석 승차감이 전륜구동방식보다 좋다. 따라서 현대차 제네시스·에쿠스, 쌍용차 체어맨 등 국산 고급세단과 벤츠·BMW·렉서스 같은 고급 수입차 대부분이 후륜구동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눈길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전륜구동차의 경우 앞바퀴가 구동하면서 방향까지 전환하기 때문에, 앞바퀴에 약간의 접지력만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전진이 가능한 반면, 후륜구동차는 뒷바퀴가 미끄러질 경우 전진이나 방향전환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뒷바퀴가 헛돌면서 도로의 옆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또 전륜구동차량은 엔진·구동장치가 전부 차량 앞쪽에 몰려 있어 앞바퀴에 차량 전체 무게의 70%가 걸리기 때문에 접지력을 얻는 것이 더 쉽다. 반면 후륜구동차는 뒷바퀴에 차량 무게의 절반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같은 노면 조건에서 더 쉽게 미끄러진다.

자동차의 구동방식에 따른 주행특성을 미리 알아두면 눈길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지난 9일 차량들이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한 눈 쌓인 도로를 헤쳐나가고 있다.

리어카를 앞에서 끄는 것과 뒤에서 미는 것을 상상해도 이해가 쉽다. 앞에서 끄는 경우(전륜구동차) 뒤쪽은 앞에서 끄는 대로 따라오게 되지만, 뒤에서 미는 경우(후륜구동차) 앞쪽이 다른 곳을 가려고 할 때 방향을 잡아줄 방법이 없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네 바퀴에 구동력을 모두 보내주는 4륜구동차는 전륜·후륜구동차보다 2배의 접지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눈길에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차량을 움직일 때는 4륜구동차가 유리하지만, 멈춰 설 때 접지력을 잃는 것은 전륜·후륜구동차나 4륜구동차나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4륜구동차는 눈길에서 가속을 잘하고도 나중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바람에 오히려 큰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

◆첨단 차량안전장비도 눈길에서는 속수무책

눈길에서 주행안전 보조장치가 일부 도움이 되기는 한다. ABS(Anti Brake-lock System)는 제동 시 바퀴가 돌지 않아 방향전환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막아주는 장치다. ABS가 없으면 눈길에서 갑자기 앞차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 경우, 스티어링휠(운전대)을 돌려도 차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앞으로 밀려나가게 된다.

반면 ABS는 1초에 10~20번 정도 브레이크를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해주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또 VDC·ESC라 불리는 차량자세제어장치는 차량이 주행 궤도를 이탈하려 하는 위험상황이 발생할 때 차가 알아서 4개 바퀴에 독립적으로 제동을 가해 자세를 복원시킨다. 길이 미끄러울수록, 운전실력이 부족할수록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장치도 아주 미끄러운 눈길에서 차량의 접지력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에는 무용지물이다. 고급 후륜구동세단의 경우, 이런 장치가 전부 들어가 있는데도 눈길주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이 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한계상황을 차량이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겨울철 주행에서는 차량의 구동방식이나 안전장비를 맹신하는 것보다, 천천히 부드럽게 운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눈 쌓인 언덕길은 낮은 기어단수로 천천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하며, 미끄러운 길을 달릴 때는 중간에 속도를 갑자기 바꾸지 않는 게 좋다.

◆후륜차라면 겨울에 반드시 스노타이어 껴야

후륜구동차는 겨울철에 반드시 스노타이어를 장착하는 게 좋다. 또 고급 후륜구동차에 장착된 고성능 타이어는 여름 등 높은 온도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굳이 눈이 오지 않더라도 접지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체인은 뒷바퀴에만 감지만, 스노타이어는 네 바퀴 모두에 달아야 한다. 스노타이어 4개의 가격은 제품에 따라 40만~50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해 금전적인 부담은 있지만, 눈길 사고로 차량이 파손되거나 사람이 다치는 것을 대비해 보험을 들어둔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SUV에 많은 4륜구동 차량의 경우 역시 스노타이어는 네 바퀴에 모두 달고, 체인은 4륜구동의 기본 구동축이 전륜 쪽이면 앞에, 후륜 쪽이면 뒤에 단다. 전륜구동차도 스노타이어는 네 바퀴 모두에 체인은 앞바퀴에만 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