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류 전기가 부활하고 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벌어진 직류·교류 전쟁에서 에디슨의 직류가 패배한 후 전 세계 전력망은 교류로 통일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술의 발전으로 100년 전의 패인(敗因)이었던 전압문제가 해결되면서 직류의 장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의 확산에도 직류가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0년 만에 직류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반도체 기술로 직류 변압 가능해져

직류는 (+)와 (-)극을 가진 전기로 건전지, 휴대전화 전지, 자동차 전지 등에서 볼 수 있다. 교류는 (+)와 (-)가 계속 바뀌어 극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와 (-)가 1초에 60번 바뀌는 60㎐(헤르츠)이며, 유럽은 1초에 50번 바뀌는 50헤르츠 교류다.

지난달 30일 한국전력·LS산전·LS전선·대한전선은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고압직류송전) 국산화 기술 개발 협동 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2011년 12월까지 제주특별자치도 내 60㎿(메가와트)급 HVDC 실증단지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프랑스 아레바(AREVA)는 올해 초 2011년 준공을 목표로 제주~진도 간 20만㎾(킬로와트)급 HVDC시스템 건설을 시작했다.

HVDC는 말 그대로 직류 전기를 전압을 높여 송전하는 방식이다. 전기를 물이라고 하면 그 세기는 전압이고 물의 양은 전류로 볼 수 있다. 전기를 멀리 보내려면 전류를 많이 흘리거나 전압을 높이면 된다. 하지만 강물이 불면 옆으로 새는 것처럼 전류를 많이 흘리면 전력 손실이 커진다.

대신 전압을 더 높이 올리면 전력 손실이 줄어들지만 에디슨 당시의 기술로는 직류의 전압을 더 올릴 수 없었다. 19세기 말에는 직류를 송전할 경우 송전 거리가 길어질수록 전력 손실이 커져 3~4㎞ 거리만 돼도 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 덕분에 직류도 전압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게 됐다. 한국전기연구원 김석환 박사는 "전력용 반도체는 상당히 큰 전압의 전류를 끊었다 켰다 할 수 있다"며 "수많은 반도체 스위치를 연결하면 원하는 대로 전압을 올리고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직류 송전하면 휴대폰 어댑터 필요 없어

변압이 자유로워지면 직류가 교류보다 송전 효율이 훨씬 높다. 100의 전력을 보낸다면 교류는 전극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이를테면 최대 140과 최소 60을 왔다갔다한다. 직류는 100 그대로 보내면 된다. LS산전 중앙연구소 정용호 박사는 "직류 전압은 교류 전압의 최댓값의 70%에 불과해 절연이 쉽고 송전탑의 높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전력을 전송할 경우 직류는 교류의 70%만으로도 똑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류는 전선의 표면으로만 흐르지만 직류는 전체로 다 흐른다. 덕분에 같은 크기의 전선에서 직류가 교류보다 2배 이상의 전류를 흘릴 수 있다.

가정에서는 전자제품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직류를 쓰기 때문에 가정에 들어온 교류 전기를 직류로 바꿔 쓴다. 휴대폰 충전에 쓰는 어댑터나 컴퓨터 본체 안에 들어 있는 전원장치가 그런 역할을 한다. 가정에 바로 직류가 들어오면 그런 장치가 필요 없다. 휴대폰을 콘센트에 바로 꽂아 충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나올 충전식 전기자동차 역시 직류를 쓴다.

태양전지나 수소연료전지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모두 직류 전기를 만든다. 풍력은 원칙적으로 교류 전기를 만들지만 바람의 세기가 일정하지 않아 전극의 변화 속도, 즉 정확한 헤르츠를 맞출 수 없다. 따라서 풍력발전 전기도 직류로 바꿔 써야 한다. 직류 송전망이 갖춰지면 이런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쉽게 쓸 수 있다.

대규모 정전사태도 막을 수 있다. 교류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한 부분이 (+)극이 될 때 다른 부분이 (-)극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석환 박사는 "전국의 전기가 박자를 맞춰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라며 "만약 한 곳에서 사고가 나면 전국의 전기가 함께 동요해 수많은 도시에서 한꺼번에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정전사태가 좋은 예다. LS산전 정용호 박사는 "HVDC 송전방식을 중간중간 쓰면 한 곳의 사고가 다른 곳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의 교류 시스템을 단시간에 완전히 직류로 뜯어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류로 바뀌면 전자제품도 다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본토와 멀리 떨어진 섬이나 국가 간 송전망에서부터 고압 직류로 대체할 수 있다. 또 지금도 아파트 한 동이나 빌딩에 기존의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장치(컨버터)를 설치하면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직류를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