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수만t짜리 배가 어떻게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운항할까. 최근 개발되는 첨단 선박 기술에는 돌고래와 상어 등 바다생물에서 응용한 것들이 적지 않다. 선박 표면에 달라붙어 운항할 때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따개비나 해조류 제거 기술, 물과의 마찰력을 줄여 속도를 향상시키게 만드는 코팅제 등 자연에서 응용한 선박 관련 기술이 잇달아 개발됐다.

선박에 달라붙은 해조류와 조개들. 마찰력을 증가시켜 선박의 연료 소비를 늘리는 주범이다. 과학자들은 돌고래와 상어의 피부를 모방해 선박에 해양생물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돌고래 피부의 세정제 모방

2002년 독일 하노버 수의대 연구진은 둥근머리돌고래(pilot whale)의 피부에는 십자모양의 홈이 촘촘하게 나 있으며, 그 폭이 워낙 좁아 따개비 새끼가 달라붙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홈에는 겔 상태의 효소로 채워져 있는데, 피부에 달라붙은 박테리아와 해조류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텔레다인 사이언티픽(Teledyne Scientific)사의 라훌 강굴리(Ganguli) 박사 연구진은 미 국방성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둥근머리돌고래의 피부를 모방한 친환경 선박 자기정화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을 선박에 응용하는 방법은 먼저 선박 표면에 금속망을 붙인다. 그리고 망의 구멍을 통해 끈적이는 물질을 계속 분출한다. 선박이 바닷물을 헤치며 달리면 선체에 달라붙었던 박테리아나 해조류는 겔과 함께 선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박테리아나 해조류는 따개비의 먹이가 된다. 먹을 게 없으니 따개비가 배에 달라붙을 이유가 없다.

연구진은 지난달 10일 '고성능 물질과 구조(Smart materials and Structures)'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바닷물을 채운 수조에서 11일간 시험한 결과 돌고래의 피부를 모방한 모형 선박 표면에서는 박테리아 개체 수가 일반 선박보다 100분의 1로 줄었다"고 밝혔다.

선체에 달라붙은 따개비나 해조류를 청소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한창 바다를 오가야 할 시간을 허비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것은 연료 소비 때문이다.

선체에 바다생물이 달라붙으면 바닷물과 부딪히는 저항력이 커져 속도를 유지하는 데 연료를 더 써야 한다. 미 해군은 군함과 잠수함을 운용하는 데 연간 5억5000만~6억달러를 쓰는데, 이 중 5000만달러가 선체에 달라붙은 바다생물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 연료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고래에서 응용한 기술 덕분에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텔레다인사는 "돌고래 피부 모방 기술을 실제 선박에 적용하면 연료소비를 20%나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환경 문제도 자연의 지혜를 빌린 이유다. 선박회사들은 선체에 바다생물이 달라붙지 못하게 화학물질 코팅을 해왔다. 하지만 코팅제에 들어 있는 유독물질은 바다생물뿐 아니라 다른 생물에도 해를 끼친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텔레다인사는 겔 상태의 물질은 석유시추에서 암석을 녹이는 데 써온 물질이어서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따개비 쫓는 상어 비늘

피부가 매끈하기는 상어도 마찬가지다. 비결은 비늘에 있다. 상어 비늘은 삼각형 돌기 모양으로 꼬리 쪽으로 나 있다. 그래서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만지면 미끈하지만, 그 반대로 만지면 거친 느낌을 받는다. 비늘은 각각 끊임없이 모양을 바꿔 바다생물이 달라붙을 공간을 없앤다.

독일 브레멘대와 미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2005년 각각 상어 비늘처럼 각진 돌기가 나 있는 선박용 코팅제를 개발했다. 돌기의 크기는 0.015㎜. 해조류나 따개비는 이런 미세 돌기 때문에 선체 표면에 쉽게 자리 잡지 못한다. 시험 결과 선체에 달라붙는 해조류가 85%나 줄었다.

복잡한 돌기가 아니어도 상어 비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사이언스'지는 지난 5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키릴 에피멘코(Efimenko) 박사 연구진의 상어 피부 모방 기술을 주목할 연구 결과로 소개했다. 연구진은 고무판을 잡아당긴 상태에서 자외선을 쏘고는 힘을 풀었다. 그러자 표면에 미세한 주름들이 생겼다. 선박에 이 물질을 붙이고 바다에서 운항한 결과, 미세 주름의 표면에는 18개월이 지나도 따개비 등이 달라붙지 않았다. 일반 선박은 운항 한 달 만에 따개비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상어 비늘은 오래 전부터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다. 많은 나라에서 상어 피부를 나무 표면을 매끈하게 하는 사포(砂布)로 써왔다. 또 노르웨이 어부들은 옛날부터 상어 피부를 신발 밑창으로 써왔다. 항상 물에 젖어 있는 갑판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 스포츠 분야에서도 상어 비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상어 비늘에는 미세한 소용돌이가 발생해 물과 표면 마찰력을 5%나 줄여준다. 골프 공에 홈이 나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스포츠용품 제조사인 스피도(Speedo)는 상어 비늘처럼 삼각형 돌기가 나 있는 전신 수영복을 개발, 2000년 올림픽대회부터 수영선수들의 옷차림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