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 서울예고 맞은편 국민은행 안쪽 골목으로 약 300~400m쯤 올라가면 한적한 주택가 언덕 왼쪽으로 '모터 라이프 카페'라는 자동차 공간이 나온다. 작년 9월 문을 열었는데, 최근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사랑방'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 카페의 주인은 영국의 스포츠카 로터스(Lotus) 마니아인 치과의사 정재균(49) 씨다. 1층에는 정씨가 7년 전부터 사 모은 로터스만으로 꾸며진 차고가 있다. 1989년형 수퍼7, 2002년형 엘리스, 2000년에 340대만 한정 생산된 340R,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주인공이 몰던 차라는 엑시즈S 등 로터스만 7대다. 로터스는 1952년 영국에서 설립된 스포츠카 회사다. 1980년대 중반까지 각종 자동차 경주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하며 스포츠카 업계에서 유명해졌다. 현재 말레이시아 국영 자동차회사인 프로톤에 인수됐지만, 여전히 영국을 상징하는 이색 스포츠카 회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로터스의 대표적인 모델에는 엘란·엘리스·에스프리 등이 있다.

모터라이프 카페 주인인 정재균씨가 카페 안에 진열된 로터스 수퍼7(왼쪽)과 2002년식 엘리스 사이에 앉았다.

차량 전시공간 안쪽의 벽면에는 정씨가 수집한 자동차 액세서리, 모형 자동차 등이 가득 진열돼 있다.

2층에는 커피·샌드위치·쿠키 등 주문할 수 있는 카페다. 전체적인 건물 디자인이 아름답고, 밤이면 은은한 조명까지 켜져 건물 자체도 구경거리로 충분하다. 카페는 네개의 벽이 모두 통유리로 돼 있어 여름에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저녁 무렵에는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이들이 몰고 온 이색 자동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을 때도 많다. 커다란 통유리 너머 바깥 자동차를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1988년 대우차 르망 레이서부터 시작해서 기아차 슈마, 대우차 프린스, 현대차 마르샤 등을 타다가 1998년 기아차의 엘란을 구입하게 됐습니다. 오픈카라는 게 마음에 들었지요. 그런데 이 차가 기존에 타던 차와는 많이 달랐어요.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차가 움직인다고 할까, 지붕을 열고 신나게 달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지요."

정씨는 "기아차 엘란은 사실 영국 로터스의 엘란을 기아차가 조립 생산한 것이기 때문에, 이후부터 로터스라는 자동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부터 로터스 엘리스, 340R, 에스프리, 엑시즈S, 211, 수퍼7 등 로터스만 7대를 연이어 사 모았다. 처음엔 아내하고도 많이 싸웠지만, 이제는 서로를 인정해주는 관계로 바뀌었다. 술·담배를 안 하는 대신에 좋아하는 자동차에 마음껏 빠지고 싶다는 정씨의 열망을 아내도 계속 외면하지는 못했다. 그는 요즘도 동호회 모임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일요일 새벽마다 조깅 대신 북악스카이웨이를 로터스를 타고 느긋하게 운전한다. 수도권 근교의 와인딩 로드(여러 차례 굽은 길)에서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기도 한다.

2층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한 가운데 로터스 211이 전시돼 있다.

"어떤 사람들은 뒤에서 저에 대해 '치과 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모았냐' '저놈은 뭐 하는 놈이냐'는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하지만 치과 개업해서 번 돈으로 충당한 것은 일부입니다. 그리고 로터스를 해외에서 구입하는 게 생각보다 비싸지 않거든요."

정씨는 "카페를 만든 것은 다른 국내 로터스 동호회원들하고 같이 차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의 자동차 마니아들을 보면 수입차를 수십대씩 사모아 개인 창고에 보관해 놓고도 공개를 꺼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 이왕 좋아하는 것 공개된 공간에 차를 전시해 놓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가끔은 공개하지 않고 혼자만 즐기는 분들의 심정이 이해될 때도 있지만, 좋은 것은 함께 즐긴다는 신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클럽 엘란' '클럽 엘리스' 등 국내의 로터스 관련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한다. 또 로터스 동호회뿐 아니라 자동차 동호회 사람들이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싶다고 요청하면 무료로 공간을 빌려주고 있다.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저녁에 차 한잔하면서 밤새 자동차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로터스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분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