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만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 여기서 바로 15㎝ 아래에 또 다른 지하 터널이 뚫렸다. 이곳은 지하철 9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대합실과 선로(線路)가 들어설 공간. 지하철 이용객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불안해했겠지만 공사는 '쥐도 새도 모르게'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나 다음 달 개통을 앞두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의 건축·토목 공사 현장에 초일류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사 기법일 뿐 아니라 선진 건설업계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난해하고 복잡한 기술들이어서 세계 건설업계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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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강남터미널역 구간의 '기적'

전체 구간이 25.5㎞인 지하철 9호선 1차 개통 구간 중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세화여고와 강남고속터미널 사이 1.78km 구간은 최대 난공사로 꼽혔다. 지상에는 왕복 10차선 신반포로, 지하 1층에는 하루 4만여명이 오가는 지하상가, 지하 2층에는 지하철 3호선이 지나다니기 때문. 쌍용건설은 전동차가 질주하는 선로 15㎝ 아래에 지하철 9호선 대합실과 선로를 만들었다.

이런 공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먼저 3호선 선로 아래에 지름 2m의 대형 파이프 10개를 밀어 넣고 파이프 안에 흙 대신 철근과 콘크리트를 채워 넣었다. 이어 파이프와 직각으로 교차하는 아치형 구조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해 엄청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쌍용건설 김우상 현장소장은 "공사를 위해 몇 개월 동안 지하철 운행을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적용되는 첨단 기술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2012년이면 전남 광양 앞바다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능가하는 교량이 들어선다. 대림산업이 건설 중인 '이순신대교'(가칭)의 특징은 교량 양쪽에 '주탑'을 각각 세우고 쇠줄로 연결하는 현수교. 특히 20피트 컨테이너 1만8000개를 실은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양쪽 주탑 사이의 거리를 1545m로 설계했다.

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의 주탑 간 거리(1280m)보다 길고 주탑의 높이(해발 270m)도 서울 여의도 63빌딩(249m)보다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초고층 빌딩도 최고 난이도로 지어

세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새로운 공사 기법은 초고층 빌딩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marina bay) 매립지에서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건물과 최대 52도의 경사로 기울어진 건물이 지상 70m(23층) 높이에서 만나 '들 입(入)'자 형태의 한 개 동을 이루는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 기술은 사업 수주 당시 선진 건설업체도 생각하지 못한 공법.

하지만 쌍용건설은 교량 건설에 주로 쓰이는 '포스트 텐션(post-tension)' 공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즉 경사진 건축물의 안쪽에 15㎜ 두께의 강철 8가닥을 꼬아 만든 특수 케이블을 설치한 뒤 건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당긴다. 또 건물의 각 층과 지반에는 기울기와 하중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센서를 설치해 정상치를 벗어나면 곧바로 경보가 울리도록 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에서도 최근 신기술이 개발돼 공사기간을 한 달 가까이 앞당겼다. 삼성건설이 현재 공사 중인 신월성 원전2호기 건물 내부에 들어가는 철판 구조물 3개를 동시에 조립하는 공법을 도입한 것.

지금까지는 개당 53t에 달하는 철판 구조물의 무게와 이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형 때문에 철판 구조물을 2개까지만 붙여 설치했다. 그러나 삼성건설은 국내 최대 규모인 1300t급 크레인을 이용, 이런 한계를 극복했다.

토목·건축 분야에 최첨단 기술이 개발되면서 앞으로 해외건설 시장에서 한국 건설업체들의 위상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최근 중동을 비롯한 해외건설 현장에서 플랜트 공사 발주가 줄어들면서 토목·건축 공사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며 "일반 토목·건축 공사보다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만큼 초일류 기술을 '무기'로 해외 건설 시장을 다각도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