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는 공중에 정지한 채 꽃에서 꿀을 빨아 먹는다. 곤충 세계에서도 파리나 나방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 최근 벌새뿐 아니라 박쥐, 파리, 나방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나는 모든 동물은 몸 크기에 상관없이 공중에서 정지한 상태에서 방향을 바꿀 때 같은 원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새나 곤충을 모방한 로봇 비행체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중 정지 땐 회전에 맞서는 힘 발생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타이슨 헨드릭(Hendrick)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초고속 카메라로 날아다니는 동물들의 날갯짓을 관찰한 결과, 정지한 상태에서 몸이 한쪽으로 수평 회전하면 그와 반대쪽으로 작용하는 힘을 만들어 안정성을 확보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새가 방향을 틀거나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을 때는 반대쪽의 날개를 더 빨리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공중에서 왼쪽으로 돌려면 오른쪽 날개를 더 빨리 퍼덕인다는 것.

사이언스 제공

하지만 초고속 카메라 촬영에서 새나 곤충은 좌우 날개를 똑같은 속도로 퍼덕였다. 대신 헨드릭 교수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 방향을 트는 것과 같은 원리를 제시했다. 즉 사무실 의자에 앉은 사람이 왼쪽으로 돌 때 왼발로 밀고 방향을 틀다가 오른발로 멈추는 것과 같다는 것.

일반적으로 새는 위아래로 날개를 퍼덕인다. 하지만 벌새처럼 공중에 정지해 있을 때는 몸을 세운 채 날개를 앞뒤로 퍼덕인다. 벌새가 정면을 보고 있다고 하자. 이 상태에서 몸이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 좌우 날개 속도가 처음엔 같다가 나중엔 오른쪽 날개를 앞으로 치는 것이 더 빨라진다. 몸의 회전방향과 날갯짓 방향이 같기 때문이다.

반대로 날개를 뒤로 미는, 즉 일반 비행에서 날개를 위로 치는 속도는 왼쪽 날개가 회전방향과 맞아 빨라진다. 그 결과 벌새가 좌우로 수평 회전할 때는 양쪽 날개의 속도가 달라지면서 몸의 회전방향과 반대로 작용하는 힘이 발생한다. 덕분에 벌새는 수평 회전을 멈추고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연구진은 파리와 나방 등 4종의 곤충과 새 2종, 박쥐 1종의 비행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 결과 이런 동작이 초파리에서 박쥐, 벌새, 앵무새에 이르기까지 몸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초파리와 벌새의 경우, 몸의 수평 회전을 멈추는 데 날갯짓의 횟수도 똑같았다.

또 지금까지의 생각과 달리 날개를 빨리 퍼덕일수록 조종능력과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퍼덕이는 로봇 비행체 개발에 도움

이번 연구는 항공기 조종에서 '요(yaw)'라고 불리는 좌우 방향 틀기 한 가지 동작만 관찰한 것이다. 기수를 위아래로 향하게 하는 '피치(pitch)'나 좌우 한쪽으로 기체를 기울이는 '롤(roll)' 등의 동작은 아직 분석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새나 곤충의 공중 정지 원리를 밝힌 점에서 정찰용 로봇 비행기 개발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찰 로봇 비행기가 공중에서 정지할 수 있다면 특정 지점을 정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새나 곤충처럼 날개를 퍼덕이는 초소형 로봇 비행체는 건국대 윤광준 교수와 미국 애리조나대, 네덜란드 델프트대 연구진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로봇 비행체는 좁은 지역에서도 이·착륙이 쉽고 장애물 회피 능력이 우수하면서, 100m 정도만 떨어져 있으면 비행 형태가 새나 곤충과 구분이 되지 않아 쉽게 포착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윤 교수는 "현재 군과 함께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길이 50㎝짜리 정찰용 로봇 비행체를 개발 중"이라며 "카메라를 달아 영상 촬영과 지상 전송 실험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같은 방식의 70㎝짜리 로봇 비행체를 최근 공개했다.

건국대 윤광준 교수가 개발한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로봇 비행체.

로봇 비행체는 좌우 날개를 퍼덕여 공중으로 뜨는 힘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방향을 틀 때는 기존 고정익 비행기처럼 뒤쪽 꼬리의 방향타나 승강타를 이용한다. 날개를 비대칭적으로 펄럭이게 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려면 모터를 많이 쓰거나 인공근육을 써야 하는데, 모터 수가 늘어나면 무게가 무거워지고, 인공근육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앞으로 10년 내 완벽한 인공근육이 개발되면 새나 곤충과 똑같이 날아다니는 로봇 비행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