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경주의 꽃 포뮬러 원(Formula One, F1)이 일상 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극한의 속도를 견디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일상생활에도 속속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조종석을 본뜬 휠체어가 만들어지고 해병대의 무릎보호대에도 F1 경주차에 쓰인 충격완화장치가 들어가고 있다. 올 시즌부터 의무화된 에너지 재활용 장치는 친환경 자동차 제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 재활용 나선 F1 경주차

영국 런던의 과학박물관은 지난주부터 F1이 세상을 바꾼 20가지 기술을 소개하는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운동 에너지 회수장치(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 KERS)'.

운전 중에 브레이크를 밟으면 자동차 바퀴와 브레이크 판이 접촉하면서 바퀴의 회전에너지가 열로 바뀌어 발산된다. KERS는 열로 낭비되는 운동에너지를 회수했다가 급가속을 할 때 재사용하게 해주는 장치다. 그만큼 연료를 덜 쓰게 돼 환경에 도움을 준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올 시즌 F1 대회부터 KERS를 의무적으로 장착하게 했다.

KERS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내연엔진과 배터리를 함께 쓰는 자동차)에 적용된 전기식이다. 감속시 열로 소모되는 에너지로 전기모터를 돌려 전기를 만들고, 이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재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플라이휠(flywheel) 방식이다. 플라이휠은 회전속도를 고르게 하기 위해 양 바퀴 사이에서 바퀴와 함께 돌게 한 원판이다. 과학박물관은 플라이브리드(Flybrid)사가 개발한 플라이휠 방식 KERS를 전시했다.

플라이휠과 자동차 바퀴 사이에는 변속기어들로 구성된 무단변속기가 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무단변속기가 플라이휠의 속도를 높이도록 기어 비(比)를 조절해 바퀴의 운동에너지를 저장한다. 이를테면 바퀴가 한 바퀴 돌 때 플라이휠은 서너 바퀴 돌 수 있게 하는 식이다. 반대로 급가속을 할 때는 다시 무단변속기가 플라이휠의 속도를 늦추게 기어비를 바꾼다. 이렇게 하면 플라이휠의 회전력이 다시 바퀴로 전달돼 속도를 높이게 된다.〈그래픽 참조〉

플라이휠 방식 KERS는 순전히 기계식으로 움직여 고장이 적고 모터나 배터리가 필요 없는 장점이 있어 일반 승용차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엔 두 방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KERS도 개발됐다. 플라이휠 내부에 자석을 넣어 회전력을 전기로 바꿔 배터리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F1 차체 제조에 쓰이는 탄소섬유로 만들어 가볍고 강한 휠체어. 좌석도 경주차 운전석처럼 인체에 꼭 맞게 만들었다.

휠체어에서 인큐베이터까지

F1의 기술은 자동차를 벗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F1팀인 맥라렌(McLaren)은 F1 자동차에 이용된 유압식 충격완화장치 기술을 이용한 무릎 보호대를 개발했다. 해군들이 쾌속정이나 보트를 타고 파도가 심한 바다를 지날 때는 몇 초마다 2.5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충격을 무릎에 받는다고 한다. 맥라렌의 무릎 보호대는 기름의 힘으로 충격을 받기 전에 미리 무릎을 굽히도록 해 충격을 방지한다. 이미 미 해병대에서 시험을 마쳤다.

장애인과 어린이도 F1 기술의 혜택을 받고 있다. 바로 F1 경주차를 만든 탄소섬유 덕분이다. 경주차는 곤충과 마찬가지로 뼈대 대신 가볍고 강한 탄소섬유 껍질이 힘을 받는다. 덕분에 자동차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영국 트렉키네틱(Trekinetic)사는 F1 차체 디자인을 했던 엔지니어를 동원해 같은 방식으로 F1 경주차만큼 가볍고 강한 휠체어를 만들었다. 좌석 또한 경주차의 운전석처럼 사람의 몸에 꼭 맞게 만들어 휠체어를 내 몸인 양 움직일 수 있게 했다.

탄소섬유는 1960년대 항공기용으로 개발됐다가 맥라렌팀이 1981년 처음으로 F1 경주차에 적용했다. 이동용 인큐베이터인 '베이비포드2(Babypod 2)'도 탄소섬유로 만들었다. 금속제 인큐베이터는 어른 여럿이 함께 들어야 했지만 베이비포드2는 혼자서도 들 수 있다. 또한 경주차 운전석처럼 아기의 몸에 가장 잘 맞도록 공간을 최소화시켜 산소공급량도 줄일 수 있다. 탄소섬유는 거실에도 들어왔다. F1 경주차에 탄소섬유를 처음 적용한 존 바나드(Barnard)는 탁자에 같은 기술을 적용했다. 덕분에 4m짜리 테이블의 두께를 2㎜로 만들 수 있었다.

수술실에 타이어 교체 기술 적용

무형(無形)의 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1초가 소중한 F1 경주에선 바퀴를 교체하고 급유를 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경주차가 들어오자마자 보조요원들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바퀴 교체를 끝낸다. 런던 그레이트 오르몬드 스트리트 병원은 페라리와 맥라렌 F1팀을 초청해 수술실을 보여주며 수술진의 동작에 허점이 없는지 조언을 부탁했다. F1팀은 바퀴 교체 때의 경험을 활용해 수술진의 동작과 의사소통 실수를 40%나 줄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