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부서지지 않는 차'와 '잘 부서지는 차'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차일까?

최근 인터넷에서는 기아자동차의 준중형차 포르테와 GM대우의 준중형차 라세티 프리미어의 충돌 테스트 결과를 놓고 네티즌 사이에 설전이 한창이다.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실시한 이 테스트에서 라세티 프리미어는 범퍼만 망가진 반면 포르테는 범퍼는 물론 라디에이터 그릴, 전조등, 보닛, 에어컨 등 13가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GM대우 지지자들은 "라세티 프리미어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기아차측은 "무조건 안 부서진다고 좋은 게 아니다"고 했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가 진행된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를 지난 6일 직접 방문했다.

2007년 경기도 이천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열린 중형승용차 토스카와 소형 화물차 포터 간 충돌실험 장면. 이 실험에서 토스카는 충돌부위가 심하게 부서졌지만 탑승자는 큰 피해를 입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포터는 운전자 사망 위험이 토스카 운전자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자동차기술연구소 제공

저속에서는 안 부서지는 차, 고속에서는 '잘' 부서지는 차

경기 이천의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만난 박진호 수석연구원은 두 차종에 대한 이 같은 인터넷상의 설전에 대해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저속 충돌에서는 무조건 안 부서지는 자동차가 좋은 차이지만, 고속 충돌에서는 '잘' 부서지는 차가 좋은 차"라고 말했다.

고속 충돌에서 탑승자가 덜 다치기 위해서는 탑승석 앞에 위치한 엔진룸이나 보닛 부위가 충돌에 의한 충격을 흡수해줘야 하는데, 충격을 많이 흡수하다 보면 많이 부서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잘' 부서지는 차는 부서지는 과정에서 차체가 위아래로 여러번 많이 구겨져 탑승석 방향으로 밀려오는 충격을 최대한 분산시켜주는 차"라고 설명했다.

박 수석연구원, 박인송 팀장과 함께 연구소 인근에 자리 잡은 충돌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에 들어서자 높이 3m, 폭 5m에 두께가 50㎝인 육중한 콘크리트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각종 충돌테스트에 사용되는 '고정 충돌벽'이다.

충돌테스트는 이 벽에 여러가지 상황에 따른 '배리어(barrier·장애물)'를 설치한 뒤 실제 자동차가 달려와 부딪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차 대(對) 차' 테스트에는 범퍼 형태의 '범퍼 배리어'를 설치하고, 전봇대나 가로수 등에 대한 충돌테스트에는 '기둥 배리어'를 사용하는 식이다.


사람 역할 대신하는 충돌실험용 인체 모형의 '몸값'은 1억원대

충돌테스트는 크게 시속 64㎞에서 벌이는 고속 충돌테스트와 시속 15㎞ 저속 충돌테스트 두 가지로 나뉜다. 고속 충돌테스트에서는 탑승자의 부상 정도가 점수로 매겨지고, 부상의 위험성이 거의 없는 저속 충돌테스트에서는 차량의 파손 정도가 점수로 매겨진다.

고속 충돌시 탑승자에 전해지는 충격을 측정하는 데는 충돌시험용 '더미(dummy)'가 사용된다. 더미는 외부가 피부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특수 고무로 덮여 있고, 내부에는 사람의 뼈와 같은 모양과 탄성력을 가진 금속 구조물이 들어간 인체 모형. 성인 남성과 여성은 물론 10세, 6세, 생후 6개월 된 젖먹이, 임신부 뱃속의 태아 더미도 있다.

시험장 내 한쪽에 자리잡은 더미 교정·보관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확 밀려나왔다. 박 팀장은 "더미에 들어가 있는 센서는 매우 민감한 장치여서 온도와 습도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관실 책상에는 3개의 더미가 각 관절이 분해된 채 수리를 받고 있었다.

더미는 머리와 목, 가슴, 배, 골반, 정강이 등 사고에서 다칠 수 있는 최대 96개 부위에 센서가 설치돼 있어 충돌테스트에서 받은 충격을 측정한다. 박 팀장은 "흔히 자동차 충돌시험 영상을 보고 '자동차가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겠지만, 국산 승용차가 대부분 수 천만원대인 반면 안에 들어가는 더미는 1억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물론 더미는 충돌 시험 후 수리해서 다시 사용한다. 차량도 수리 후 경매를 통해 다시 판매한다. 파손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연구소에 전시한다.

박진호 수석 연구원은 "이제는 한국차의 안전성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며 "현재 세계 자동차 업계는 '차 대 차 충돌'과 비교해 더 작은 면적에 더 큰 충격이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기둥 충돌'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