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합실에서 유모차 속의 아기가 칭얼거리자 유모차를 끌던 어머니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아기 손에 쥐여준다. 최신 터치스크린 폰이다. 아기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강력한 사운드를 갖춘 최신 휴대폰을 손에 쥐고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2009년 지구촌의 아이들은 이처럼 온통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자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젓가락보다 컴퓨터 마우스와 휴대폰을 먼저 손에 쥐고, 인쇄 매체보다 디지털 매체를 먼저 접하면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대들을 일컬어 언론과 사회학자들은 '넷 세대(Net Generation)'나 'N세대' 또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부른다.
2007년 미국 경영 분야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혔던 '위키노믹스(Wikinomics)'의 저자인 돈 탭스콧(Don Tapscott)이 최근 펴낸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Grown Up Digital)'는 지구촌 N세대에 대한 종합 보고서 성격을 띠고 있다.
저자는 400만달러를 들여 전 세계 12개 나라의 10~20대 6000여명을 인터뷰, 그들의 생활양식과 정치 사회 참여 방식, 학교에 대한 생각, 직업이나 직장에 대한 인식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하버드대 재학 중 페이스북(facebook .com)을 창업해 거부 반열에 오른 마크 주커버그(Zuckerberg)도 포함됐다.
그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1977~1997년에 태어난 세대들의 8가지 특징을 뽑아냈다.
첫째, N세대들은 선택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기성세대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는 순차적인 삶을 거부하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사표를 던진다(freedom).
둘째, 상품과 서비스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변형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휴대폰이나 MP3플레이어를 구입하면 겉모양과 색깔 등을 자기 취향대로 꾸미고, 필요하면 소프트웨어도 스스로 개발하여 사용한다(customization).
셋째, 협업에 익숙하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같은 사이트에 수시로 접속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기부한다. 하지만 아무런 금전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일방적인 강의보다 동료와 대화를 즐긴다(collaboration).
넷째,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사실 여부를 검증하려고 한다.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에 의문이 생기면, 즉각 관련 사실을 조사하여 온라인에 결과를 전파하면서 여론을 조성한다(scrutiny).
다섯째, 도덕적 가치를 높이 산다. N세대들은 저개발국에서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나 제품 구매를 거부하는 등 기업의 도덕성을 요구한다(integrity).
여섯째, 늘 재미를 추구하는데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글 직원들은 회사 마당에 설치된 간이 수영장에서 수시로 수영을 즐기고, 자신의 애완견을 사무실에 데려와서 근무한다(entertainment).
일곱째, 스피드를 중시한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메신저로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메일을 보내고 즉시 답장을 받지 못하면 얼굴을 돌린다(speed).
여덟째, 기존 질서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혁신 제품을 쉬지 않고 내놓아야 한다.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6개월~1년 단위로 혁신 제품을 쏟아내는 것도 N세대의 혁신 정신 때문이다(innovation).
탭스콧은 이런 특징을 지닌 N세대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학교와 직장, 정치제도 등 지구촌의 기존 질서를 뿌리에서부터 해체하면서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N세대가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서로 연대하면서 지구촌을 지배하는 '최초의 글로벌 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테면 N세대는 기성세대처럼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지식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으로 전략을 익히고, 나아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다. 음악을 좋아하는 N세대들은 온라인에서 국경을 넘어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협업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온라인의 다른 친구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이런 경험 때문에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살리면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 N세대는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온라인을 무대로 오바마를 지지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온라인 모금을 주도함으로써 오바마를 당선시키는 주역이 됐다.
탭스콧의 N세대에 대한 관점은 지금까지 등장한 밀레니엄세대, X세대 등 다른 신세대론보다 파격적이며 긍정적이다.
탭스콧은 나아가 기성세대들에게 N세대들에 대한 인식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N세대의 특성을 회사와 학교, 정치, 가정에서 적극 수용하라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들에 대해서는 기존 마케팅 방식을 재고하라고 주문한다. N세대는 전통 매체에 기반한 대기업의 브랜드 프로모션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 스스로 입소문을 만들어 전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탭스콧의 N세대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우선, N세대론이 X세대나 밀레니엄세대 등 지금까지 10~20대의 새로운 문화와 의식을 분석한 접근법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새로운 세대의 부상을 소재로 삼아 정치·사회적인 변화를 분석하는 방법은, 시대를 막론하고 10~20대에서 관찰되는 성장기적 특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킬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탭스콧의 책은 1997년에 펴낸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는 세대(Growing Up Digital)'의 후속 작업 성격을 띠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Grown Up Digital)'라는 제목 자체가 10여년 전 작업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탭스콧은 10년 전 자신의 두 자녀가 비디오 게임기와 PC 등 디지털 디바이스를 만지면서 온라인(on-line)에서 자라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 'N세대'라는 개념을 고안하고 'NGenera'라는 회사까지 설립했다. 그 후 그는 N세대에 대한 탐구와 조사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여왔으며, 이번에 축적된 연구 결과를 다시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는 10년 전 자신에게 영감을 줬던 두 자녀가 N세대로 자라나 자신과 작업을 함께 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두 자녀가 공동 작업자(collaborator)이며, 공동 저자(coauthor)이기도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