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조선소에 가든지 배를 짓는 독(dock)이 있다. 길쭉한 직육면체 형태로 모양도 비슷하고, 첨단 설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기능은 별 차이가 안 난다. 하지만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생산성과 매출은 천차만별이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밀이 이 안에 숨어 있다.

독 회전율 중국의 2배

지난달 확장 공사를 마친 현대중공업 1독은 한국 조선업계의 독 운영 노하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부지가 협소한 관계로 기존 공간의 25%만큼을 늘렸을 뿐인데 생산 능력은 2배로 늘었다. 일반적인 독은 위에서 보면 'I'자형이지만 현대중공업 1독은 측면의 가운데 부분만을 옆으로 확장해 'ㅏ'자처럼 생겼다.(그래픽 참고) 생산 능력이 향상한 것은 기존 독에서 배를 완성하는 동안 새로 확장한 공간에서 선박의 부분(절반 정도)을 만들기 때문이다. 기존 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배를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이미 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진수 기간이 절반으로 준다. 간단해 보이지만 세계 첫 시도다. 연간 4번 진수하던 생산능력이 올해부터는 8번으로 늘어난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조선업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데에는 설계 능력, 건조(建造) 경험, 최신 공법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노하우야말로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조선공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소의 독 회전수(연간 진수 횟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쟁국 중국의 2배 이상이다. 독 회전이 빠를수록 생산성이 좋다는 의미이다.

지난해 STX조선 진해조선소는 독 1개에서 28척을 만들었다. 중국 최대 다롄조선소에서 6개 독과 9개 육상·해상 건조장에서 모두 30여척을 건조한 것과 맞먹는다. 독의 크기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조선소들은 보통 한 번 진수할 때 1~2척을 진수한다. 하지만 STX는 생산 일정을 정밀하게 계산해 3척을 동시에 진수하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공기(工期)를 줄였다. 도성득 전무는 "선박의 종류와 크기를 고려해 수주 단계부터 건조할 때까지 2~3년간 계획을 치밀하게 짜는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거대 선박 블록 등 새로운 공법 적용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일감이 몰리면서 독이 부족해지자 상식을 깨는 새로운 공법을 속속 개발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육상에서 최대한 크게 블록(선박을 이루는 부분품)을 만드는 방법을 채택했다.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짓듯, 거대한 선박도 부분 단위로 나뉜 블록(block)을 따로 제작해 이를 독에서 용접해 붙인다. 육상에서 블록을 크게 만들면 독에서 용접해야 하는 블록의 개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제작 기간도 단축된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초대형 선박은 수십개의 블록으로 이뤄지는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블록을 10개 내외로 대형화하는 새 공법을 개발했다. 삼성중공업은 단 2개의 블록으로 배를 만들 수 있는 신공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조만간 적용할 예정이다. 두 회사는 또한 '플로팅 독(해상 독)' 공법도 도입했다. 바다에 떠 있는 독에서 선박을 건조한 다음, 독을 물속으로 가라앉혀 배가 뜨게 해 바다로 빼내는 방법. 육상에 땅을 파서 독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진수 작업이 쉬운 게 장점이다. 한진중공업 부산조선소의 독 길이는 약 300m. 325m짜리 선박을 수주하자 고민이 생겼다. 그러자 한진중공업은 독특한 방법을 적용했다. 300m까지는 정상적으로 독에서 건조하고, 나머지 25m는 다른 곳에서 만든다. 그런 다음 독이 끝나는 지점의 물속에 구조물을 설치하고 용접하는 방식이다.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조선소들은 한 독 내에서 다양한 선종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선주(船主)의 다양한 요구와 선박 시황에 맞춰 독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도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독(dock)

배를 만드는 작업장. 땅을 파 만든 일종의 대규모 웅덩이로, 직육면체 형태가 일반적이다.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짓듯, 거대한 선박도 부분 단위로 나뉜 블록을 따로 제작해 이를 독에서 용접해 완성한다. 배가 완성되면 독 안으로 바닷물을 채워 띄운 다음 바다로 내보내는 것이 진수(進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