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SK그룹의 IR 담당 부서는 하루 종일 비상이었다.

SK, SK에너지, SK케미칼, SK증권 등 주력 계열사들의 주가가 속절없이 급락한 탓이다. 환율 급등으로 인한 실적 악화 전망도 원인이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하락을 주도했다. SK에너지의 컨소시엄 참여 규모가 1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SK 주가는 결국 7%, SK에너지 주가는 5% 떨어졌다.

동부그룹 주가도 비슷했다. 동부생명의 6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소식이 빌미가 돼, 동부건설 주가는 하한가를 쳤고, 동부증권·동부화재도 하한가 가까이 추락했다.

자산 60조(2007년 기준)인 SK그룹 주가가 1000억원 안팎의 투자 소식에 춤을 추고, 자산이 9조원 가까운 동부그룹 주식이 금융 계열사의 600억원 유상 증자 소식에 일제히 하한가로 밀린 것이다. 하지만 불과 하루 뒤인 3일, SK(2.8%), 동부제철(12.6%) 등 급락했던 주가는 일제히 반등했다.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지면서 환율 급등, 세계 경기 침체, 내수 부진으로 가뜩이나 불안 심리가 팽배한 자금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급락한 기업들이 여러 악재를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최근 움직임은 과장·과열된 측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꼬리 무는 '자금 위기설'

올 상반기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 유동성 위기설은 하이닉스·금호·STX·두산그룹 등 대기업들의 주가를 잇따라 끌어내렸다. 이달 들어 코오롱·동부그룹·SK·LS 그룹 등 실적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추세다.

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6월 해외 CB(전환사채) 발행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곤두박질쳤고, 지난달 국내에서 500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 소식으로 또 다시 추락했다. 금호그룹은 지난 7월 대우건설금호타이어의 풋백옵션(매도선택권) 행사와 그룹 실적 악화 전망으로 위기설에 휩싸였다. 지난달 29일에는 두산그룹이 작년 말 51억 달러에 인수한 미국의 건설장비 브랜드 '밥캣' 인수 자금과 관련해 주가가 무너졌다. 이달 들어 1일엔 건설경기 악화 전망으로 코오롱 그룹 주가가 이틀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금호 "루머 적극 대응", 두산 "소통 부재"

금호그룹 이용주 전무(CFO)는 "증권가와 일부 인터넷 신문 등이 올해 초부터 제기하기 시작한 금호그룹에 대한 금융감독원·국세청·검찰 등의 수사 착수 루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뼈 아프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경제 침체 등의 여파로 일부 계열사들의 수익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산 35조원(금융자산 제외)에 부채비율 156%인 우량 그룹이 심각한 자금 위기 상황이라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그러나 "대형 M&A를 잇따라 성사시킨 뒤 비(非)핵심 자산 매각 계획을 충분히 밝히지 않았고, 대우건설을 대한통운 인수에 참여시키는 등 시장의 기대와 다소 다르게 나간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하 두산인프라코어 기획조정실 전무는 "주요 계열사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고 주요 계열사 신용등급이 A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그룹 영업이익이 2조4000억원에 달할 전망인데, 밥캣에 10억 달러(1조1500억원)를 출자했다고 유동성 위기와 연결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주가 폭락은 시장과의 소통 부족에서 비롯한 측면이 있으므로 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 "황당", 코오롱 "억울"

동부그룹 고위 관계자는 "동부생명의 최대주주인 동부화재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부담하는 금액은 200억원 정도로 연간 4000억원의 흑자를 내는 상황에 비춰보면 결코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다"며 "정상적인 유상증자까지 위기설과 연관시키는 것은 황당하다"고 말했다.

코오롱 그룹은 "아파트 분양시장 냉각으로 고전하는 것은 사실이나, 유동성위기는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코오롱건설 관계자는 "대출 등을 통해 끌어올 수 있는 돈이 2000억원을 넘는다"며 "하반기 갚아야 할 돈은 460억원에 불과해 잠실시영 재건축 등 시공 단지 입주 잔금 1354억원에 훨씬 못 미친다"고 말했다.

"투명성 높이고 시장 신뢰 얻어야"

한 금융 전문가는 "아직 우리 대기업들이 시장과 투자자들에 대해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주들의 기대와 반대로 향후 경기에 대한 정확한 예측 없이 거액을 동원해 M&A를 하거나, 기업 정보를 불성실하게 공개한 기업들에 대해 시장이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주와 투자자 중심의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시장의 안 좋은 상황에서 조그마한 악재에 시장이 크게 반응하는 불안 심리가 팽배해 있다"며 "기업들이 경영 실적이나 전망을 보다 투명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