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용자들 10만여 명의 활동 범위와 패턴을 익명으로 6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 대부분 사람들이 10km 이내에서 일정한 활동 패턴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노스이스턴(Northeastern) 대학 물리학과 교수이며,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Albert-László Barabási) 박사 팀이 네이처(Nature, http://www.nature.com/nature)지 최근호에 발표한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출생인 그가 주창한 네트워크 이론은 경제학, 사회학, 공학 등 여러 학문에도 수용돼 전 세계 학계에 두루 유명한 과학자다.

노스이스턴대학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센터(Center for Complex Network Research, CCNR)는 지난 4일(현시지각) 해외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바라바시 교수팀이  '인간 행동 움직임 패턴의 이해(Understanding Individual Human Mobility Patterns)'라는 제하의 논문을 통해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개인의 움직임을 추적해 이동 경로와 이력 등을 조사했다"며"그 결과 인간은 단순한 특정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인간 행동 움직임 패턴의 이해' 논문을 게재한 네이저 최신호

◆휴대폰 이용한 활동 습관 조사 “60㎞ 넘어간 경우는 극히 적어”

바바라시 교수가 마르타 곤잘레스(Marta C. González), 시저 이달고(César A. Hidalgo)와 공저한 이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들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산업화된 외국’에서 숫자와 문자가 섞인 26자리 휴대전화 번호 600만개 중 10만 여명의 휴대폰 익명 사용자를 무작위 추출했다.

이들은 이후 약 6개월 동안 중계탑을 통해 사용자들이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을 때 위치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또한 위치 추적 장치가 달린 휴대전화 206개를 나눠주고 1주일 동안 2시간 단위로 추적하기도 했다. 두 데이터는 거의 비슷한 데이터가 나왔다.

조사 결과, 이들은 프랑스 수학자가 제시한 '랜덤 워크(random walk, 임의로 걷기)' 이론 중 하나인 '레비 플라이트(Lévy flight)'법칙을 따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추적 대상자들의 활동 궤도가 대부분 5~10km 이내 범위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조사 대상의 절반은 6개월 동안 10km 이내에서, 조사 대상의 대다수인 83%는 60km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정기적으로 320km를 넘나들며 넓은 활동 패턴을 나타낸 사람은 3%가 채 되지 않았다. 다만 1% 미만의 극소수는 1000km를 벗어난 사례도 조사됐다.

바라바시 교수는 “우리는 인간 움직임 궤적이 얼마나 세속적이며 공간적인 규칙성을 띄고 있는지, 또 시간에 의존치 않는 움직임을 가진 각 개인들이 얼마나 규칙적인 공간(집이나 일터)으로 되돌아가는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곤잘레스 박사 역시 “여가 시간을 5~50여개 장소에서 보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몇의 장소를 다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전염병이 확산될 때 사람들의 이동 범위를 파악하거나, 국가적인 교통 계획을 세우는 정책결정권자들에게도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10만여명의 익명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사진은 폐기를 앞두고 있는 중고 휴대폰들

◆“미국 내 조사는 불법 소지”…사생활 보호 논란 일 듯

이 연구는 전염병 확산이나 교통량 예측과 같은 분야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개인 사생활 노출 우려로 인한 윤리성 논란도 불가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 연구는 미국 이외에 한 ‘산업화된 국가’에서 민간 기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익명 조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 담당자들은 조사 지역이 어느 곳인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롭 케니(Rob Kenny) 미 연방통신 위원회(FCC) 대변인은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휴대폰 추적은 미국 내에서는 불법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동 저자인 시저 이달고 연구원은 “완전히 26개로 이뤄진 ‘코드’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 휴대폰 번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바라바시 교수 역시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나는 반평생 동안 프라이버시 침해 이슈를 걱정하며 연구해 왔다"며 "과학자들은 어떤 휴대폰 번호가 이번 연구에 반영됐는지,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 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윤리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사생활과 신뢰성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점이 여전히 많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아서 캐플란(Arthur Caplan) 펜실베니아대 생명윤리 전문가는 “내가 도심 한가운데에서 공개적으로 축구 경기를 하면 연구 대상이겠지만, 내 휴대폰은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영리 정보 보호 감시 단체인 PRC(Privacy Rights Clearinghouse)의 폴 스테판(Paul Stephens) 책임자 역시 “동의 없는 추적은 ‘빅브라더 이슈’를 야기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