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高)환율 정책이 '악(惡)순환'으로 흐르는가.

원래 기획재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통해 수출촉진→기업 수익증대→투자 활성화→경기회복→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성장의 선순환'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환율→물가상승→소득감소→소비위축→성장률 저하'로 흘러가는 악순환 효과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2일 발표된 소비자 물가는 6년11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구매력을 뜻하는 국민소득은 5년 만에 가장 큰 감소세를 보였다. 근본적인 원인은 국제유가·원자재값 급등이지만, 고환율 정책이 이를 부추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부도 뒤늦게 고환율 정책을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달 말부터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2일 달러대비 원화환율은 5일(영업일 기준) 연속 하락하며, 달러당 1022원대까지 떨어졌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고환율 정책은 수출촉진이라는 '빛'과 물가자극이라는 '그림자'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정부는 고환율 정책이 수출 호조세를 뒷받침해 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믿고 있다. 정부는 5월 무역수지가 6개월 만에 흑자(10억달러)로 돌아선 것도 고환율 정책의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5월 무역수지 흑자는 선박수출이 사상최대치(49억달러)를 기록한 덕분이었고, 조선산업은 저환율 시대에도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에 이를 고환율 덕이라고 해석하긴 어렵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의 수출 호조세 중 세계 수요 증가 요인에 의한 것이 84%에 달하고, 환율 요인은 미미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출호조가 기업의 투자활성화로 이어지는 효과도 찾아보기 어렵다. 1분기 설비투자는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0.4%로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반면 고환율의 물가 상승 촉발 효과는 이미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4월 수입물가 상승률 31% 중 환율 상승에 따른 요인이 10%포인트에 달했다.

우리와 반대로 일본·중국·대만·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올 들어 자국 통화 가치를 5~6% 정도씩 끌어올렸다. 한국은행은 '아시아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현황과 정책대응'이란 보고서에서 "아시아 각국의 정책당국은 통화 절상에 의한 수출 둔화를 감수하면서 해외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를 위한 고환율인가"

고환율 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출 대기업들에겐 고수익을 안겨주는 반면 서민층의 생활고를 가중시켜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올 1분기 중 실질 국민소득(GNI)이 작년 4분기 대비 마이너스(-) 1.2%를 기록한 데는 고환율이 일조한 측면이 있다.

올 1분기 중 우리 국민들이 생산한 총부가가치(GDP)는 205조원이었으나, 교역조건 악화에 따른 무역손실(무역과정에서 국외로 빠져나간 소득)이 27조원에 달해, 실제 국민들이 손에 쥔 소득은 180조원(해외 주식투자에 따른 배당금 2조원 포함)에 그쳤다.

한은 경제통계국 신창식 차장은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1차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환율 상승이 수입가격 상승폭을 더 키워 소득 감소 효과를 증폭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실질소득 감소 현상은 소비 부진을 낳아 내수위축을 낳고 있다. 올 1분기 중 민간소비는 0.4% 증가(전분기 대비)하는 데 그쳐, 내림세(작년 3분기 1.3%, 4분기 0.8%)가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고환율 정책은 화물트럭 기사들(서민층)의 소득을 삼성전자 등 수출 대기업으로 이전하는 결과를 낳는다"면서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포기했던 2005년 이후 내수가 되살아났던 경험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물가상승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층"이라면서 "성장률 목표치를 낮추더라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정책조합을 새로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