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편지를 받는 즉시 이름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따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내용의 이른바 '행운의 편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편지 봉투로 전해지다가 요즘엔 이메일을 통해 무작위로 전달되고 있다. 요즘은 특정 사회적 문제에 대해 서명을 부탁하는 청원성 이메일도 부쩍 많이 늘었다.

그렇다면 이런 연쇄 이메일(chain letter)은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일까. 최근 컴퓨터 과학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전파되는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 기존의 이론과는 다른 독특한 전파 경로가 있음을 확인했다. 1대 다(多)로 퍼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대부분의 편지는 아는 사람을 거쳐 1대 1로 퍼져나갔다.

1대1 전파 경로 행운의 편지나 청원 이메일 전파경 로를 나뭇가지 형태로 그렸더니 대부분 한 줄기에서 한 가지만 나와있는 1대1 경로로 나타났다.

◆연쇄 이메일 1대1로 전파

지금까지 연쇄 이메일은 전염병이 전파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해왔다. 행운의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자신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나 마케팅 전문가들은 연쇄 편지의 전파 형태를 '바이러스성(viral)'으로 규정해 왔다.

하지만 미 코넬대 존 클라인버그(Kleinberg) 교수와 캐나다 칼튼대의 데이비드 리벤-노월(Liben-Nowell) 교수 공동 연구진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청원성 이메일을 조사한 결과는 이런 통념과 달랐다.

연구진은 미 국립과학재단과 포털 사이트 구글, 야후의 지원을 받아 지난 10년간 인터넷에 떠돈 두 가지의 대표적인 청원성 연쇄 이메일을 분석했다. 하나는 1995년 시작된 공공 라디오 지원을 청원하는 이메일로 316개의 복사본에 1만3000명이 서명했다. 다른 하나는 2002년 시작된 이라크전 반대 메일로 637개의 복사본에 2만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연구진은 이메일 주소를 토대로 메일 전파 경로를 나뭇가지 구조 형태로 그렸다. 만약 바이러스성 전파라면 한 줄기에서 수많은 가지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한 줄기에서 한 가지만 나 있는 형태였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3월 25일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94%가 자신의 서명이 든 이메일을 단 한 사람에게만 전달했다. 청원 메일을 받은 사람은 자신과 관련 있는 특정 사람에게만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6단계 분리 이론 통하지 않아

이른바 '6단계 분리' 이론이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6명 정도를 거치면 연결이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연쇄 이메일에서는 주고받은 사람들의 연결 과정이 수백 단계나 됐다.

만약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서명이 든 청원성 이메일을 전파했다면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연결되는 단계는 짧아질 것이다. 실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충무로의 영화 배우 박중훈도 6명만 거치면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와 연결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연쇄 이메일이 전파되는 경로는 그와 달리 단선적이었다. 사람들은 같은 내용의 연쇄 이메일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받지만 그 중 하나에만 서명을 해서 자신과 가까운 특정 사람에게만 전달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갖기를 희망하는 이에게만 전달한 것이다.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는 "정보는 처음에는 사회적 유대가 강한 집단 안에서만 돌다가 비교적 유대 고리가 약한 사람을 거쳐 다른 집단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며 "연쇄 이메일이 단선적으로 전파된다면 바이러스 감염 때처럼 폭발적으로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여론 형성이나 정치적 동원과 같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적잖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쇄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수백 단계로 분리돼 있다면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형되거나 소실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