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회사 NEC에서 개발한 '건강과 식품 조언 로봇'은 맛과 향기만으로 와인 53병의 포도 품종과 재배지를 정확히 알아맞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0일 최첨단 전자 코(e-nose)와 전자 혀(e-tongue)를 갖추고서 음식 맛보는 역할을 대신할 로봇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본지 3월 12일자 보도
"이 와인은 1995년산으로 이탈리아 로마 북부의 키안티 지방에서 생산된 메를로 품종입니다. 손님께서 원하시는 드라이한 맛은 덜하지만 오크통에서 숙성된 깊은 사과 향이 오늘 저녁 메뉴와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음식점에서 인간 대신 로봇이 이렇게 서비스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최근 일본의 전자회사 NEC가 '로봇 소믈리에(와인 전문 감별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로봇이 어떻게 와인의 맛을 감별할 수 있을까. NEC측은 "와인에 다양한 파장의 적외선을 조사(照射)하면, 함유된 포도의 종류 및 숙성도에 따른 성분 차이에 따라 반사되는 적외선 파장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센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로봇에 장착된 이 센서에 반사된 적외선을 분석해 미리 입력해놓은 와인의 특성치와 비교하면 포도 품종과 재배 장소, 단맛의 정도 등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와인의 질을 결정하는 냄새와 색깔, 그리고 혀에서 느끼는 맛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인간 소믈리에의 능력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로봇에 이러한 기능을 부여해 로봇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시도는 매우 흥미롭다.
최근 초소형 전자정밀 기계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오감(五感)에 해당하는 감각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센서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물체를 식별하고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인공 눈' 장치는 이미 상용화돼 로봇에 쓰이고 있다. 미국 MIT 망막재생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인공 눈은 시력을 잃은 사람들의 눈 대신에 장착하는 것이다. 인공 눈이 잡아낸 영상을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 시력을 복원할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브라운관 속 '6백만불의 사나이'가 현실화되는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인공 코, 인공 피부, 전자 혀, 인공 귀 등 이미 다양한 감각 센서들이 개발됐다. 극소량의 가스나 화약 성분과 화학적으로 반응해 전기신호를 발생하는 인공 코 기술은 화재나 폭발물 탐지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곳곳에 묻혀있는 지뢰 등을 탐지해낼 수 있다. 힘이나 미끄러짐, 온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인공 피부 역시 로봇뿐만 아니라 휴대전화의 입력장치로도 쓰이고 있다.
이 밖에 전기화학적 반응을 이용한 전자 혀, 인간의 달팽이관을 모사하는 인공 귀 기술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감각기관들을 장착한 지능로봇들은 기능면에서 점차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