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신기술을 배우는 생체모방에서 단연 스타는 도마뱀붙이(gecko)다. 분류상 도마뱀과 같은 뱀목(目)이나 아래 단계인 과(科)에서 갈라지는 소형 파충류인 도마뱀붙이는 발바닥에 나있는 수억개의 미세 털로 접착제 없이도 벽을 타는 능력이 있다. 최근 도마뱀붙이의 또 다른 비밀이 밝혀졌다. 바로 꼬리. 미끄러운 벽을 오를 때 꼬리가 추락을 방지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며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도 몸의 방향을 바로잡게 해준다는 것.

◆벽 타기의 또 다른 무기 꼬리

과학자들은 도마뱀붙이를 모방해 사람 대신 위험한 곳을 올라갈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로봇의 발에는 도마뱀붙이의 발바닥에 나있는 것처럼 인공 미세털이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 같은 도마뱀붙이 로봇이 개발돼 있다.

그러나 발바닥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일반 벽은 상관없는데 아주 미끄러운 곳을 오를 때는 로봇 발바닥이 자주 미끄러지기 때문. 반면 자연의 도마뱀붙이는 미끄러운 곳에서도 지장을 받지 않는다. 뭔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로버트 풀(Full) 교수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 17일자에 '주요논문(article highlights)'으로 발표된 논문에서 "도마뱀붙이의 또 다른 무기는 꼬리"라고 밝혔다. 즉 꼬리가 미끄러운 수직 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며, 나무에서 떨어질 때는 스카이다이버가 몸의 균형을 잡듯 꼬리로 균형을 잡아 땅에 네 발이 먼저 닿게 해준다는 것이다.

초고속 비디오 촬영 결과, 도마뱀붙이는 일반 벽에서는 발바닥만으로 벽을 타고 오르며 꼬리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매우 미끄러운 벽에서는 종종 한 발이 미끄러져 허공에 뜨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도마뱀붙이는 꼬리로 벽을 때려 몸통이 뒤로 젖혀지는 것을 방지하고 다시 발로 벽을 잡을 수 있게 했다. 미끄러진 발이 두 개 이상일 때는 꼬리를 쫙 펴서 벽에 밀착시켰다.

풀 교수는 "마치 자전거나 오토바이의 뒷받침 살과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일은 수천분의 1초 사이의 찰나에 일어났다. 이를 통해 도마뱀붙이는 초당 30㎝ 정도의 속도로 벽을 타오를 수 있었다. 도마뱀붙이는 발을 헛디뎌 몸통이 60도 이상 뒤로 젖혀졌을 때도 꼬리를 이용해 다시 벽에 달라붙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연구진은 로봇 도마뱀붙이에게도 꼬리를 붙여 같은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활강하는 도마뱀붙이. PNAS 18일자 표지사진으로 채택됐다. 도마뱀붙이는 꼬리를 이용해 배가 땅으로 향하도록 몸의 자세를 바로잡는다. 꼬리는 원하는 곳으로 착륙하게 하는 방향타 역할도 한다.

◆스카이다이버 활강과 같은 동작 보여

꼬리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인공 나뭇잎에 도마뱀붙이를 올려놓은 다음, 나뭇잎을 쳐서 도마뱀붙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런데 몇 번의 실험에도 도마뱀붙이는 항상 네 발이 먼저 땅에 닿는 안정된 착지능력을 보였다.

초고속 비디오 촬영 결과, 도마뱀붙이는 나뭇잎에서 거꾸로 떨어질 때 꼬리를 회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힘으로 몸통은 꼬리의 회전방향의 반대로 돌아갔으며, 배가 땅을 바라보는 정상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꼬리와 발을 쭉 펴서 마치 스카이다이버가 활강하듯 땅으로 내려갔다.

공중에서 몸을 가누는 것은 고양이의 장기다. 고양이는 허공에서 척추를 구부리고 뒤틀어 몸의 자세를 잡고 네 발로 땅에 착륙한다. 반면 도마뱀붙이는 척추는 그대로 둔 채 꼬리만 회전시켜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또한 착륙지점으로 방향을 틀 때도 꼬리를 이용했다.

동물의 꼬리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캥거루는 꼬리로 온몸을 지탱하며, 카멜레온이나 원숭이는 꼬리로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다. 공룡은 걷거나 달릴 때 꼬리로 거대한 몸집의 균형을 유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풀 교수는 "이 동물들에서는 꼬리가 정적인 동작에만 쓰이는 반면, 도마뱀붙이에서는 벽 타기나 활강처럼 고속 운동에서 쓰인다는 점이 차이"라며 "벽타기나 활강 로봇을 개발하거나 무인정찰기 또는 심지어 우주선의 효율적인 조종에도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마뱀붙이는 벽을 타다가 발이 미끄러지면 꼬리를 벽에 붙여 몸이 뒤로 젖혀지는 것을 막는다(a). 이 모든 과정은 0.23초 이내에 일어났다. 로봇 도마뱀붙이에도 꼬리를 달자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