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타고난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2300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생각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1월호에 따르면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투표장에 열심히 나가는 사람들은 그러한 성향을 타고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동기를 분석한 결과, 나이나 성별, 학력, 소득, 종교, 정치적 식견 등이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정치학자인 제임스 파울러 교수는 유전적 요인의 효과를 알아보고자 쌍둥이 연구를 했다.

쌍둥이 연구는 유전자 전부를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와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한 이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유전자가 특정 형질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접근 방법이다. 한마디로 쌍둥이 연구는 유전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찾는 고전적 방법이다. 파울러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일란성 쌍둥이 326쌍과 이란성 쌍둥이 196쌍의 투표 기록을 분석하고, 유전적 요인이 투표 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60%이고 환경적 요인은 40%임을 밝혀냈다. 파울러는 선거 운동이나 집회에 참여하는 정치 활동에 대해서도 쌍둥이 연구를 하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미국정치학회(APSA) 모임에서 발표되었다.

미국 유권자의 정치 성향, 이를테면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차이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인의 3분의 1은 보수주의자, 5분의 1은 자유주의자이다.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이 우파 성향이라면 진보적인 민주당원들은 좌파 성향이다. 이러한 정치적 신조는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나 뉴욕대의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 교수는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정치 성향에 대해 질문하면서 뇌의 활동을 살펴보았는데, 의견이나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하는 기능을 가진 부위인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에서 자유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좌파 성향의 사람들이 변화의 요구에 더 민감하므로 그러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연구결과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온라인판의 9월 9일자에 실렸다.

이러한 정치 성향은 무의식적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비롯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확증 편향은 자신이 가진 믿음을 확증하는 정보만을 찾아서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확증 편향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뜻이다. 에모리대의 심리학자인 드루 웨스턴 교수는 뇌에서 확증 편향이 발생하는 부위를 찾아내고, 확증 편향이 무의식적인 현상이며 정서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에 웨스턴은 핵심 공화당원을 자처하는 15명과 골수 민주당원 행세를 하는 15명 등 30명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들여다보면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연설 내용을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나왔다. 공화당원들은 케리에게, 민주당원들은 부시에게 일방적인 혹평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험 참여자들은 예외 없이 무의식적으로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있음이 분명했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한편 뇌 영상 자료를 보면 이성과 관련된 뇌의 영역이 침묵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인 전방대상피질(ACC) 등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연구결과는 2006년 미국 심리학회 총회에서 발표되었다. 지난 6월 하순 웨스턴은 ‘정치적 뇌’(The Political Brain)라는 저서를 펴냈다. 부제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함에 있어 정서의 역할’이다.

웨스턴의 연구결과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대통령, 판사, 최고경영자, 과학자가 확증 편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엉뚱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