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북동쪽으로 50㎞ 가량 떨어진 에식스(Essex) 지역의 첼름스퍼드(Chelmsford) 시내 파크웨이 거리. 대로변 커다란 노란색 벽돌 건물 정면 위에 왠지 친숙한 간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테스코 홈플러스(TESCO Home Plus)'.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쇼핑 카트를 올려놓고 2층으로 올라가는 무빙워크(트래블레이터)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흔하지만, 영국의 다른 매장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영국 주거용품점인 B&Q나 전자제품점인 커리스(Curry's), 핼리팩스(Halifax) 등은 단층 구조로 돼 있으며, 무빙워크는 찾아볼 수 없다.

홈플러스의 물건 판매대도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영국 매장과 달리 웬만한 어른이면 어디나 손이 닿을 수 있다. 판매대 간격은 영국 매장과 달리 오밀조밀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모습이다.

매장을 안내해준 테스코 직원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지 않으냐"며 빙그레 웃었다. 알고 보니 '홈플러스'란 이름부터 매장 구조, 상품의 진열 방식까지 모두 한국식이다.

78년 전통의 세계적 유통업체 영국 테스코가, 설립한 지 불과 8년밖에 안 된 한국의 자회사로부터 브랜드에서 운영 노하우까지 몽땅 들여온 것이다.

▲ 영국 동북부 첼름스퍼드의 테스코 홈플러스 매장. 복층 구조에, 키 높이의 물건 판매대, IT시스템 등 운영 노하우와 심지어 매장 이름까지 한국 법인에서 역(逆)벤치마킹했다.


◆테스코 본사에서 배워간 한국의 유통 노하우=삼성테스코는 지난 1999년 영국 테스코와 삼성물산이 50대50으로 합작해 만든 회사다. 삼성물산이 지분을 매각해 지금은 테스코 지분이 대부분(94%)이고 삼성물산은 6%만 갖고 있다.

삼성테스코는 출범 이듬해인 2000년 8월 첫 점포인 안산점을 내면서 홈플러스란 브랜드를 내걸었다. 그런데 첫해부터 ‘대박’이 터졌다. 인근 경쟁업체의 2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

테스코 본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합작 첫해부터 이런 실적을 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결국 2002년 본사 직원들이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에 수시로 찾아와 상품 구성과 진열 방식, 고객 동선(動線)과 무빙워크의 위치, 층간 높이, 건물 디자인 등 운영 정보를 세세하게 파악해 갔다.

테스코는 한국 홈플러스의 성공 비결이 한국형 매장구조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층이 아닌 복층(複層) 구조와 지하 주차장, 백화점식 상품 진열 등이었다. 기존 테스코 경영진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삼성테스코 곽성권 과장은 "영국에서는 복층 구조가 무조건 불편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한국 매장을 보니 무빙워크를 중심으로 고객 동선이 매우 효율적으로 구성되는 것을 보곤 놀라워하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한 수 배운 테스코의 신설 매장들은 대부분 복층 구조를 채택하고 무빙워크를 설치했다. 영국에선 지하 주차장이 별로 없지만, 맨체스터를 포함한 일부 매장은 한국처럼 지하 주차장도 만들었다.

급기야 테스코는 지난 2005년 10월부터 논푸드(식품 제외) 전문매장 7개를 오픈하면서 브랜드를 모두 '테스코 홈플러스'로 쓰기에 이르렀다. 테스코의 리사 카바나(Kavanagh) 홍보부장은 "홈플러스란 이름이 가정용품, 전자제품 등 논푸드 전문매장 콘셉트에 맞아 본사에서 전격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법인의 IT 기술이 본사의 글로벌 표준으로=테스코의 역(逆)벤치마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 테스코 매장에서 사용하는 상품 관리 시스템 등 IT 시스템을 아예 한국의 홈플러스에 맡겨 개발했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사장이 테스코그룹 회장 테리(Terry) 경에게 IT 시스템 개발을 맡겠다고 제안했고, 테리 경은 이를 선뜻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삼성테스코는 2002년부터 1년 반 동안 국내 IT 전문가 70여 명을 보내 IT 인프라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당시 작업에 참여한 한국 기술자들은 지금은 터키, 중국, 일본, 미국 등 테스코 진출국으로 나가 유통 시스템 구축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테스코의 IT 기술이 테스코그룹의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삼성테스코의 올해 매출은 6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을 제외한 세계 테스코그룹 매출의 3분의 1에 이른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은 “한국식 경영과 운영 효율성이 인정 받은 결과”라며 “이제는 한국이 세계에 선진 유통기법을 가르쳐 주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코벌라이제이션(Kobalization·Korea+globalization)=한국시장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경영방식이 글로벌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면서 점차 글로벌스탠더드로 확산되어 가는 현상이나 과정. '로컬(local)기업의 성공 비결이 글로벌시장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록벌라이제이션(Loc-balization)' 이론을 한국 기업에 적용한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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