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제이손 비소쏘(Vizoso·29)씨가 한국말로 소리쳤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외곽 신도시. 한국 제너시스가 직영하는 치킨 체인 BBQ 바구아다(Vaguada)점의 조리실 안은 전투가 벌어지는 듯 분주했다. 점장(店長) 비소쏘 씨는 ‘빨리빨리’를 연발하며 하루 닭 170여 마리를 요리해 내는 조리실 직원 2명을 독려했다. 페루 출신인 그는 2005년 스페인으로 건너와 2년 반 만에 점장까지 올랐는데, 그 비결이 바로 ‘한국 사람처럼’이다. 그는 “한국 방식(Korean way)에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문법 파괴=이 식당은 스페인식 '문법(文法)'에서 한참 벗어났다. 우선 배달. 스페인은 한국보다 닭 소비(1인당 1년 34㎏)가 4배나 많지만 BBQ가 오기 전까지는 배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BBQ는 우선 '텔레 포죠(Tele Pollo·전화로 배달해 먹는 닭)'라는 상표를 등록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경 2.5㎞까지 무조건 배달한다는 것을 기치로 걸었다. 닭이 눅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숨구멍이 달린 빨간색 닭 배달통도 한국에서 공수해 달았다. 이젠 배달 닭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할 만큼 한국식 배달 문화를 스페인에 심었다.

▲ BBQ 스페인 바구아다점 매장. 연중 무휴, 양념 치킨, 반경 2.5㎞ 내 배달 등 한국 특유의 영업 방식으로 스페인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BBQ 바구아다는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이것 역시 한국식이다. 대부분 스페인 식당들은 오후 4~8시까지는 문을 닫고, 주말에도 쉰다.

스페인 식당은 대개 손님이 불러야 점원이 온다. 낙천적인 국민성을 반영하듯 식당 서비스도 느긋하다. 반면 BBQ는 한국식으로 식탁에 벨을 달았다. 처음에 스페인 고객들은 벨의 쓰임새를 몰라 신기해했다고 한다.

아직 스페인 고객들이 벨을 눌러 점원을 부르는 한국 방식에 익숙하지는 않다. 그래서 점원들은 항상 손님들에게 한국식으로 말하라고 교육받는다. “끼에레 알고 마스(Quiere algo mas·더 필요한 것 있으세요)?”

◆문화까지 판다=맛도 다르다. BBQ 진출 전 스페인의 닭요리 체인점은 KFC 같은 튀긴 닭과 스페인 전통 아사도(asado·전기구이 통닭)뿐이었다.

BBQ는 한국식 양념 치킨, 야채 치킨을 전면에 내걸었다. “세계에 한국의 음식뿐 아니라 문화까지 함께 팔아야 한다”는 것이 BBQ 윤홍근 회장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현지화도 중요하지만, ‘현지 맞춤식 우리 문화’도 함께 팔아야 다른 글로벌 업체와 차별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한국식 매운 맛도 해외에 수출해야 할 맛이라는 판단에 현지인 1000명을 상대로 ‘테스트 마케팅’을 했다. 그런데 조사 대상자의 80%가 한국식의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다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2005년 3월, BBQ 첫 스페인 직영점을 열어 테스트 마케팅 결과에 굴하지 않고 매운 맛을 시도하고, 경기 이천에 있는 ‘BBQ 치킨대학’ 연구소에서 매운 맛과 양념 맛을 조절한 치킨을 개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현재 BBQ 바구아다의 주력 메뉴인 바르바꾸아(Barbacoa). 한국 식의 ‘달콤 짭짜름한’ 바비큐 양념 맛이다.

◆"KFC를 뛰어넘는다"=2005년 스페인의 외식(外食) 전문 잡지 '호텔레리아(Hoteleria)'는 BBQ 스페인 진출을 두고 "KFC에 도전하는 한국 프랜차이즈"라고 평가했다. 문재근 BBQ 스페인 사장은 "스페인 프랜차이즈 협회 사람들도 맛·배달시스템을 벤치마킹하러 온다"고 말했다.

목표는 KFC와 같은 다국적 프랜차이즈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다르다. BBQ는 2003년 이후 세계 34개국에 진출했다.

중국의 경우 시내 중심가보다는 주택가를 타깃으로 했다. 아파트 주변에 닭 요리 체인점이 밀집한 한국 식이다. 안전성을 믿게 하기 위해 주방과 홀 사이에 창을 설치해 조리 과정을 기다리던 손님들에게 보여 줬다. 한국에선 익숙하지만, 중국에서는 낯선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대학가 주변을 공략했다. 대학 주변에 먹거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기숙사로도 배달하는 낯선 방식을 도입했다. 몽골의 경우, 조만간 오토바이 대신 ‘말’을 타고 배달하는 시스템을 선보이기로 했다.

윤홍근 BBQ 회장은 “우리의 라이벌인 KFC는 닭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중동·중남미에서 실패했지만, 우리는 한국식 맛과 마케팅으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