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무덤 벽화에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작은 새가 시체의 머리 위를 떠도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인들은 죽음의 순간에 영혼의 새가 육체를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주검과 결합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에 퍼져있었다.

육체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진 영체(astral body)가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체험하는 현상을 유체(幽體)이탈경험(OBE·out-of-body experience)이라 이른다. 한마디로 유체이탈경험은 사람의 의식이 일시적으로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을 느끼는 체험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괴테 등 수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유체이탈경험을 글로 남겼다.

유체이탈경험은 대개 몇 초에서 몇 분까지 지속된다. 침대에서 쉬거나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특별한 이유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죽음이 찾아온 아득한 순간에 자주 발생한다. 어떤 환자는 마취상태로 수술을 받는 동안에 의사들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본 자신의 수술 장면을 설명하기도 한다. 유체이탈경험은 대부분 제한된 장소에서 발생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생생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수술을 받는 도중에 육체를 떠난 의식이 병실 밖으로 빠져나가 의사와 간호사가 복도에서 은밀하게 나눈 이야기를 엿듣고 돌아온 사례가 보고됐는데, 무의식 상태에서 환자가 들은 대화 내용이 당사자들에 의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요컨대 유체이탈경험은 의식 또는 영혼이 육체와 독립된 존재로 여겨지는 심령현상이다. 심령현상이란 심령, 곧 마음속의 영혼에 의해 나타나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러한 심령현상을 경험했으나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과학은 어떤 현상이 발견됐다면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과정을 통해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하지만, 유체이탈경험과 같은 심령현상은 본질적으로 반복해서 실험을 했을 경우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뇌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유체이탈경험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스위스 제네바대학병원의 신경과학자인 올라프 블랑크 박사이다.

2002년 ‘네이처’ 9월 19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블랑크는 11년간 간질병을 앓은 43세 여성의 뇌 안에서 측두엽을 전기적으로 자극한 결과, 그 여성이 “병상에 누워 있는 내 몸이 보인다”며 유체이탈경험을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2004년 ‘브레인’ 2월호에 게재한 논문에서는 뇌가 손상된 환자 6명을 연구한 결과 측두엽과 두정엽을 잇는 부위가 손상되면 의식이 몸을 떠나는 느낌을 체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2007년 ‘사이언스’8월 24일자에 실린 논문에서 블랑크는 처음으로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유체이탈의 느낌을 끌어내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날짜의 ‘사이언스’에 스웨덴의 헨리크 에르슨 박사가 역시 유사한 실험을 실시했다는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두 사람은 가상현실(VR) 기법을 이용해 유체이탈경험을 인위적으로 흉내낸 것으로 밝혀졌다. 가상현실은 컴퓨터가 창출한 3차원 환경을 현실세계인 것처럼 착각해서 경험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가상현실로 들어가려면 특수 안경이 달린 헬멧을 써야 한다. 블랑크와 에르슨은 가상현실용 헬멧을 씌우고 실험을 한 결과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연구는 시각 및 촉각 기능을 교란하여 뇌에 일시적 착란을 유발시키는 것만으로도 유체이탈경험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두 사람의 연구 성과는 공학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자신이 몸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는 착각을 응용하면 컴퓨터 게임, 인터넷을 통한 원격수술, 우주로봇의 원격조종 기술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8월 25일자에서 블랑크와 에르슨의 실험은 인간의 의식 연구에 돌파구를 마련했으므로 노벨상을 타지 말란 법이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