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친한 선배는 일본으로 갔습니다. 친한 동료 만화가 5명은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라그나로크’란 만화로 명성을 떨친 이명진(33·사진)씨는 더 이상 만화 단행본 작업을 하지 않는다. 2001년부터 ‘라그나로크 온라인’ 게임 시리즈를 기획하고, 그래픽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단행본 일은 접었다. 매일 오전 9시30분 라그나로크를 만드는 회사 그라비티로 출근해 다른 직원과 함께 일한다.

이씨처럼, 종이에 만화를 그리는 동료 만화가는 크게 줄었다. 그대신 게임업체에 들어가 모니터 위에 캐릭터를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상당수 작가들은 아직 단행본 만화 시장이 살아 있는 일본으로 떠났다. 만화책을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만화가게(대본소)나 만화대여 업소도 줄어들고 있다. 만화를 불법 복사해 인터넷에 올리고, 그걸 공짜로 보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직 저를 만화가라고 부르니, 제 직업은 만화가예요. 종이에 하던 작업을 컴퓨터 모니터 위에 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내 그림과 스토리가 종이라는 제약을 벗어났다고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다는 이씨는 게임은 만화와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는 혼자 그릴 수도 있지만 게임은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픽과 음악, 프로그래밍 기술…. 영화 같은 종합예술이죠.”

유명 만화가의 수입과 게임 기획자의 수입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이씨는 “계약 때문에 말하긴 힘든데, 만화작업을 할 때보다 2~3배 더 버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예전에 2000원짜리 만화책이 한 권 팔릴 때마다 인세로 200원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그린 만화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1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라그나로크 만화책도 수십만부가 팔렸다. 현재 게임 개발에만 전념하는 이씨는 게임에서 발생한 매출액의 일부를 로열티로 받는다.

그라비티는 28일 ‘라그나로크 온라인2’ 게임의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날 15만명이 회원에 가입했고, 14만명이 동시에 게임을 즐겼다. 라그나로크 온라인2도 성공한다면 그의 수입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컴퓨터보다는 종이와 잉크를 더 사랑한다.

“누가 뭐래도 전 만화가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화를 그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