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크라이슬러를 미국 최대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 중 하나인 서버러스(Cerberus) 캐피털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매각 금액은 74억 달러. 1998년 인수 금액인 360억 달러의 5분의 1의 가격이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를 본거지로 한 크라이슬러는 40년 전만 해도 ‘GM’, ‘포드’와 함께 ‘빅3’를 형성하며 미국 자동차 시장을 석권한 회사다. 당시 ‘빅3’는 미국에서 팔리는 자동차 10대중 9대를 생산했지만, 점차 일본과 독일, 한국 등에게 시장의 절반을 내주고 말았다.

메르세데스-벤츠를 만들어내는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때만 해도 두 회사의 합병은 ‘세기의 결합’으로 불렸다. 다임러는 닷지 트럭에서 벤츠까지 글로벌 제국을 기대했다. 그러나 수년간 이어진 고유가(高油價)로 인해 크라이슬러의 주력차종인 SUV·픽업트럭 판매가 급감했고, 밀어내기식 할인 정책의 남용으로 브랜드 이미지도 실추됐다. 합병을 이끈 위르겐 슈렘프 전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은 실적 부진으로 2005년 사임했고, 9년 뒤 크라이슬러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서버러스의 크라이슬러 인수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노사관계에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서버러스 같은 사모펀드 회사는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을 높인 뒤 비싼 값에 되파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크라이슬러 역시 대규모 비용 삭감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이는 근로자들에 대한 의료비와 연금 지원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크라이슬러 노조와 전미자동차노조(UAW)도 강력히 반발할 조짐이다.

크라이슬러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금 시스템이 계속될 경우 2009년이면 크라이슬러의 시간당 평균 노동비용은 94.77달러가 될 전망이다. 반면 도요타나 혼다 등 일본 업체들은 50.50달러라고 한다. 이런 비용차이의 반 이상이 퇴직자에 대한 연금, 의료보험, 생명보험 등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크라이슬러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근로자들에게 연금과 보험 혜택이라는 당근을 제공했다. 결국 크라이슬러가 부담해야 할 연금 및 보험료 누적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약 170억 달러가 됐고 이번 매각 협상에서도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