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미국은 ‘영·미 자본주의’ 제도의 이식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 내 자국 영향력의 극대화를 꾀했으나, 의도와 달리 중국이 ‘최대 수혜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로웰 디트머 미국 버클리 대학 교수는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지난 18~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동아시아 자본주의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주제의 국제 학술회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외환위기 후 10년간 아시아 각국의 개혁정책을 재평가하기 위해 조선일보, 한국국제정치학회, 미국 버클리대학 한국학연구소가 공동 개최했다. 디트머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아시아 외환위기는 중국으로 하여금 공기업·금융개혁, 공무원 인력구조조정 등 경제개혁 조치를 단행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함에 따라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외환위기 국가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해외자본이 중국으로 몰려들면서 2000년대 초반 중국의 경제 붐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디트머 교수는 “이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했으며, 미국 시장에서 중국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한국·대만 등은 중국에 대한 ‘부품공급 기지’로 전락했고, 이는 다시 중국의 아시아 경제 허브(거점)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돈 헬만 미국 워싱턴대학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중심의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경제 블록(bloc)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IMF(국제통화기금) 주도의 세계화 정책에 대한 반작용들이 중국 중심의 경제 폭발과 연계된 결과”라고 말했다.

하용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수천 년간 동아시아 패권 국가로 군림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전략에는 이런 과거의 노하우가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